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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세이도, 시장 진입땐 低價 공세 · 확장땐 高價 유혹…카멜레온 '변신'

Best Practice - 日 화장품업체 시세이도

中 시장 선점 로레알 등 맞서 싸고 질 좋은 제품 승부
소득수준 낮은 내륙 공략땐 최상위층 1% 집중 겨냥
"質 떨어진다" 반대 딛고 베트남에 첫 해외공장 건설…동남아시장 진출 교두보 마련
“가격을 최대한 낮추고 품질은 그대로 유지해 중국 시장에 들어간다. 손해를 보더라도 어쩔 수 없다.”

1980년대 초 시세이도가 내린 결단이다. 중국 화장품 시장이 개방된 당시 로레알, 프록터앤드갬블(P&G), 에스티로더 등 미국과 유럽의 화장품업체들이 중국에 진출했다. 얼마 뒤 이들 업체의 고가 화장품은 중국 상류층으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다.

후발 주자인 일본 최대 화장품업체인 시세이도(資生堂)는 망설였다. 로레알, P&G 등에 비해 인지도는 낮고 영업망도 없었다. 비싼 제품을 내놓기도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시세이도는 시장 조사에 착수했다. 1년 뒤 중국 내 지방소도시 젊은 여성층을 공략 대상으로 삼고 저가 상품을 내놨다. ‘화시’(華姿) 등 화장수 한 병의 가격은 9~10위안이었다. 당시 일본 판매 제품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타이밍에 맞춰 전략도 유연하게 바꿔

저가 정책에 대한 반대 의견도 나왔다. 일본 기업들은 업종에 관계없이 고품질에 맞는 높은 가격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세이도는 결단을 내렸다. 미국 유럽의 경쟁 업체를 이기기 위해 몇 년간은 ‘고품질 저가 마케팅’을 펼치기로 한 것이다. ‘싸고 품질 좋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중국 내 상류층도 시세이도 화장품을 찾기 시작했다. 중국시장에 시세이도가 성공적으로 진입한 비결은 유연한 전략이었다.

이후 시세이도는 중국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매출을 확대했다. 시세이도의 매출 증가율은 매년 평균 20~30%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 화장품 시장 점유율 11%를 기록해 3위에 올랐다.

1990년대 시세이도의 유연한 전략은 다시 빛을 발한다. 중국 화장품 시장 규모는 개방 초기 3억5000만위안에 불과했다. 그러나 1990년대 시장은 20배나 성장했다. 외형이 확대되면서 저가 공세를 펼치던 시세이도는 전략을 바꿨다.

중국 내에서 소득 수준이 낮은 내륙지방에서도 중·저가보다 고가 제품 수요가 증가했다. 이에 맞춰 시세이도는 1996년 100위안짜리 ‘오프레(AUPRES)’란 크림을 내놓았다. 당시 베이징 상하이 등 경제 성장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던 도시 지역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의 평균 월급이 500위안 정도였다. 상당히 고가 제품이었다. 저가 제품으로 중국시장을 뚫은 뒤 고가 제품으로 다시 한번 시장 확대에 나선 것이다. 고가의 제품으로 1%의 최상위층을 공략하기로 한 것이다.

이 전략은 적중했다. 출시하자마자 불티나게 팔렸다. 하루평균 수십병이 도심 매장에서 판매됐다. ‘아름다운 중국 여성은 오프레를 씁니다’라는 광고도 인기를 끌었다. 부유층뿐 아니라 대학생 등 젊은 고객도 오프레를 찾았다. 중국인의 소득 수준이 크게 향상되면서 ‘비쌀수록 좋다’는 소비자 인식도 매출 확대에 기여했다.

중국 화장품업계 정보지인 중국 화장품망은 “시세이도는 소비자들의 변화하는 성향에 맞게 전략을 제때 바꾸면서 성장해왔다”고 평가했다. 또 “시세이도가 자사 제품의 포지션을 상향 조정한 것은 다른 일본 업체들이 하지 못했던 과감한 도전이었다”고 평가했다.

시세이도는 최근 일본에서 1000엔대의 스킨케어 제품을 ‘센카’라는 브랜드로 출시했다. 올해 중국에도 이 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시세이도에 따르면 2011년 말 현재 중국에 진출해 있는 점포 수는 5000개에 달한다. 시세이도는 지난해 중국에서 매출 700억엔, 순익 210억엔을 달성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년에 비해 10%씩 늘어난 수준이다.

○화장품업체의 첫 번째 해외 생산 시도

시세이도는 해외 공장 건설에서도 과감한 전략을 보여줬다. 지난해 베트남 호찌민시 외곽에 공장을 열었다. 당시 세계 85개국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었지만 동남아시아 지역에 공장을 가동한 것은 처음이었다. 일본 화장품업계의 첫 번째 해외생산 공장이기도 했다.

이때도 내부에선 반대 의견이 나왔다. 화장품 품질은 물론 원산지도 중요하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시세이도는 강행했다.

높은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사전 조치도 취했다. 베트남 현지인 15명을 선발, 일본 공장으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5개월간 품질과 생산 관리 등 생산 기초부터 일본 문화까지 익히게 했다. 베트남에서 화장품을 생산하는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최첨단 설비를 도입했다.

화장품을 용기에 넣는 라인은 반도체와 전자부품 제조 라인과 같은 수준의 청정 설비를 갖췄다. 구시다 야스 시세이도 베트남 사장은 “새로운 것을 흡수하려는 베트남인들의 의욕과 회사의 철저한 준비가 맞아떨어져 일본에서 만든 제품과 큰 차이가 없었다”며 베트남 진출이 성공적이었다고 강조했다.

신흥국을 향한 시세이도의 확장전략은 계속되고 있다. 이 회사는 올해 초 “향후 3년간 중국과 동남아시장에 모든 것을 걸겠다”고 선언했다. 중국은 물론 앞으로 동남아 시장까지 시야에 넣고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2010년 기준 시세이도의 매출에서 해외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45.1%였다. 매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여성을 사랑해라…스바키의 힘

후쿠하라 아리노부(福原有信) 시세이도 창업자는 원래 일본 해군 소속 약사였다. 군 제대 후 그는 1872년 도쿄 긴자에 일본 최초의 서양식 약국을 열었다. 이때 약국 이름이 시세이도였다. 시세이도의 이름엔 ‘미와 건강을 추구하는 과학’을 추구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계절에 민감한 일본 여성 피부에 맞는 약을 연구하던 그는 20년 뒤인 1897년 화장수 ‘오이데루민’(지금도 팔리는 110년 된 장수 상품)을 개발하면서 화장품 시장에 뛰어들었다. 오이데루민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미와 건강을 함께 추구하려는 그의 경영 철학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후쿠하라는 1915년 아예 주력 업종을 약품에서 화장품으로 바꾸고 로고도 새로 고쳤다. 종전 매의 모양에서 부드러운 ‘스바키(동백꽃)’로 변경한 것. 상품 및 디자인 개발 전문가인 가와시마 요코(川島蓉子)는 최근 자신의 저서 ‘시세이도 브랜드’에서 “시세이도는 일본 여성이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알리는 데 주력했다”며 “이를 위해 최고의 제품을 가장 먼저 내놓기 위해 노력했다”고 평가했다.

시세이도의 화장품은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제품이 적지 않다. 시세이도는 1980년 업계 처음으로 자외선차단 지수(SPF)가 써있는 선크림을 내놨다. 또 1990년대 하얀색 페이스 파우더밖에 없던 시절 7가지 색상(화이트 옐로 로즈 등)의 ‘레인보 파우더’를 출시했다. 니혼게이자이는 “시세이도는 일본 화장품 업체 중 변신에 가장 민감한 업체”라고 평가했다.

장성호 기자 ja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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