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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 박물관?…"거긴 아직 사람이 산다고요"

스토리&스토리 - 2030 기자의 아날로그 이야기

꺾어도 꺾어도 새로운 골목길 풍경…하지만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
추억 더듬기 하기엔 냉혹한 현실…오늘이 힘겨운 달동네가 아직 많기에
길은 대개 동서남북 정방향으로 뻗어 있게 마련이다. 도시계획에 따라 만들어질수록 더 그렇다. 서울만 봐도 대로는 물론 골목길까지도 대부분 동서남북으로 길을 내고 있다. 이런 길의 장점은 길을 잃을 염려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골목길이라도 목적지의 방향만 대충 알고 있다면 직각으로 꺾인 길을 따라가면 된다.

◆20~30년 과거로 돌아간 듯한 달동네

기자가 한창 사진에 취미를 붙이던 시절 가장 좋아했던 촬영 코스는 서울 곳곳에 숨겨진 골목길이었다. 혼자서 카메라 한 대와 필름 몇 롤만을 챙긴 채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 장소를 가리지 않고 돌아다니곤 했다. 평소 자주 다니던 도로에서 안쪽으로 한 블록만 들어가도 새로운 낯선 공간이 펼쳐진다는 점이 골목길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서울 시내 대부분의 골목길은 동서남북으로 돼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많다. 대표적인 곳이 ‘달동네’다. 야트막한 산이나 구릉에 위치해 달과 가장 가깝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상당수 달동네들이 재개발을 거치며 아파트촌으로 바뀌었지만 서울에는 아직도 많은 달동네가 있다. 평지에 자리잡은 동네와 달리 구릉에 위치하다 보니 골목길도 지형에 순응한 모양이다. 당연히 길도 중구난방으로 뻗어 있다.

보통의 동네에서 직각으로 난 길을 네 번 꺾으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달동네 길은 꺾어도 꺾어도 새로운 길이 나온다. 이런 곳에선 먼 곳에 있는 지형물을 확인하고 그 방향을 따라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지만 시야를 막고 있는 구릉 탓에 그조차도 쉽지 않다. 기자도 과거 아현동 달동네의 좁디 좁은 골목길을 돌아다니다 방향 감각을 상실하고 길을 잃기도 했다. 보이는 길을 따라 일단 큰 도로로 빠져나왔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이어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길을 헤매다니면서도 굳이 달동네를 찾았던 이유는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던 독특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회색빛 콘크리트 담장 위로 삐쭉 튀어 나온 쇠창살, 담장 너머 허공에 매달린 빨랫줄, 폭이 제각각인 계단, 시멘트 계단 틈새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뽐내던 잡초까지…. 20~30년 전 과거로 돌아간 듯한 신기함에 뭐에 홀린 듯 셔터를 누르곤 했다.

골목길 사진을 그만둔 이유는 어느 순간부터 이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저 과거의 풍경이자 신기한 피사체라고 치부했던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냉혹한 현실이란 점을 어렴풋이 느낀 뒤론 사진을 찍는 일이 부끄러워졌다. 일종의 불편한 진실을 알아버린 셈이다.

◆달동네 박물관이 감추는 ‘불편한 진실’

인천 송현동에는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이란 곳이 있다. 산동네였던 송현동 일대를 재개발하면서 근린공원과 함께 조성된 시설이다. 달동네 박물관이란 이름답게 과거에 썼던 물건이나 포스터 등이 진열돼 있다. 박물관의 가장 큰 볼거리는 달동네를 통째로 옮겨놓은 듯한 전시장이다. 거대한 전시장 한쪽이 하나의 동네를 이루고 있다. 꼬불꼬불한 골목길과 계단, 구멍가게, 다세대 주택까지 현실감 넘치는 공간을 구현했다. 이색적인 매력이 있다 보니 입소문을 타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장소가 됐다. 중장년층은 과거의 향수를 떠올리고 어린 아이들은 ‘옛날 사람들이 이런 곳에서 살았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대개 박물관이란 단어는 ‘유물’이란 단어와 어울린다. 실제 대다수 박물관은 ‘지금은 볼 수 없는’ 옛 물건들을 보존해 현대의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물론 현대의 물건들을 전시해 늘어놓는 박물관도 있다. 하지만 박물관에 놓여진 물건에 대해 사람들은 으레 옛것이라 생각한다. 1917년 마르셀 뒤샹이 공장에서 찍어낸 변기에 ‘샘’이란 이름을 붙여 전시회장에 놓는 순간 예술작품이란 새로운 지위를 부여받았던 것과 비슷하다. 박물관의 전시품들은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 물건’이란 새로운 맥락을 갖게 된다.

박물관이란 이름의 번듯한 건물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순간 현대와는 단절된 과거의 물건들과 조우하는 기분이 든다. 달동네조차도 생겨난 배경이나 현재의 상황과 관계없이 아련한 옛 추억으로 가득한 과거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달동네에 살고 있는 불편한 현실을 가리는 일종의 ‘기만’이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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