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득이가 신났다. 영화 '완득이'(감독 이한)가 개봉 한 달만에 400만명 이상을 동원,외화 대작들을 누르고 승승장구 중이다. 화려한 컴퓨터그래픽(CG)도 톱스타도 없는 제작비 47억원짜리가 8000만달러짜리 '리얼 스틸'과 1억2000만달러짜리 '신들의 전쟁'을 이긴 것.120만명이 손익분기점이라니까 완전 대박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잘 버무렸다. 가난한 장애인,결혼이주여성,외국인 근로자 등 소외계층과 무너진 공교육 등 사회적 이슈를 담아냈으되 어둡거나 무겁지 않게 비볐다. 12세 등급가가 무색하지 않게 선정적 장면이라곤 없다. 원작에 없는 러브라인이 있지만 뽀뽀에 가까운 키스가 나오는 정도다. 폭력이라야 킥복싱 대결이고,욕설 또한 특정인의 두어 단어에 한정된다.

착한 영화가 흔히 범하는 구차함이나 늘어짐도,현실 고발영화가 지니는 살벌함과 칙칙함도 없다. 세상의 악과 편법을 강조해 분노를 조장하기보다 바르게 살아가려 애쓰는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정치적 요소를 걷어낸다. 화합과 희망을 얘기하지만 하루 아침에 모든 게 해결될 수 있다는 식의 섣부른 환상은 배제한다.

가난하고 외로운 완득이를 일으켜 세우는 건'투쟁하라'는 선동이 아니라 '가난을 쪽팔려 하지도,가난 때문에 무너지지도 말라'고 이르는 스승의 사랑이요,가족의 바탕은 혈연보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요,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건 장애 · 피부색 · 국적 · 학력에 상관없는 어울림임을 전한다. 원작에 바탕을 둔 스토리는 탄탄하고,대사는 공감을 자아낸다.

"야간자율학습을 면제해준다는 게 말이 돼.야간강제학습이라면 몰라도." "가난한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굶어죽는 게 부끄러운 거야." "장애를 갖고 일하는 게 쪽팔려? 멀쩡한 몸뚱이로 일하지 않고 방에서 뒹구는 게 훨씬 쪽팔리고 한심한 거야." '요즘엔 보이는 것 모두가 너를 닮았다'는 촌스러운 연애편지 또한 남녀노소 관객 모두를 활짝 웃게 만든다.

배우들의 연기도 한 몫 한다. 고약한 듯 따뜻한 교사 동주 역을 능청스럽게 해내는 김윤식과 일찌감치 애늙은이처럼 돼 또래들에겐 관심도 없지만 나름 순진한 완득이를 진짜같이 연기한 유아인은 물론,타고난 욕쟁이 같은 이웃집 아저씨 역의 김상호,예쁜 척하지 않고 주어진 역을 소화하는 여배우들까지 흡인력을 높인다.

디테일도 중요한 요소다. 촬영기간보다 더 오래 찾았다는 장소, 곧 완득이와 동주 선생이 사는 집이 마주보고 골목도 있고,햇반을 던지는 거리와 각도도 맞고,작은 교회도 있는 동네는 현실감을 더한다. 빗나간 햇반을 찾아오라는 동주 선생의 횡포와 이웃의 욕설이란 웃음장치가 거저 만들어진 게 아닌 셈이다.

그러나 영화 '완득이'의 힘은 무엇보다 뒤처진 학생을 끌어안으려는 교사의 노력과 열정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막말에 회초리를 드는 통에 '똥주'로 불리는 담임은 교실에선 아픈 가족사를 들춰내고 집에 오면 학교에서 받은 햇반을 내놓으라고 소리치지만 반 꼴찌에 외톨이인 완득이가 빗나가지 않도록 지켜보며 챙기고 존재조차 모르던 엄마를 만나도록 주선한다. 스승의 사랑은 엄숙하지도 간지럽지도 않다. 그저 밤낮 없이 불러제낀다. "얌마 도완득." "완득아."

그는 학생들을 벌하면서 말한다. "찍어서 올려라." 똥주는 분명 바로잡아줘야 하는 일인데도 불구,구설에 휘말릴까봐,싫은 소리를 들을까봐,엮여서 귀찮아질까봐 모른 체 못본 체 지나치지 않고,불러세우고 간섭하고 혼내고 다독거리는 스승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통합과 소통에 필요한 건 주장이 아니라 책임과 사랑 · 배려 · 협조임을 일러준다.

극장문을 나서면서 김춘수 시인의 '꽃'이 떠오른 것도 그런 까닭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

박성희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