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에서 미스코리아까지…美파슨스디자인스쿨 파워
아방가르드(전위적 예술)한 디자인의 브랜드 '구호'를 만든 정구호 제일모직 전무(49)는 네 살 어린 가수 이현우 씨(45)와 동기동창이다. 20여년 전 미국 뉴욕 파슨스디자인스쿨 내 같은 기숙사에서 살면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했던 것.푸드스타일리스트 김정민 더스타일링그룹 대표도 같은 시기에 공부했다. 이 학교 출신의 국내 패션업계 종사자는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38),한지원 이브자리디자인연구소장(57),박윤정 디자이너(44),김성운 샘엔컴퍼니 대표 등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유명 해외 디자이너 중에는 도나 카렌,안나수이,신시아 로리,마크 제이콥스,톰포드,아이작 미즈라히 등이 이 학교를 졸업했다. 할리우드 영화배우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는 가방 브랜드 '상아'를 만든 가수 출신 임상아 씨(38)도 이곳 출신이다. 송자인 · 최혜정 · 홍지선 디자이너,박영국 · 김혜숙 · 최선명 · 김서영 서양화가,가수 조PD와 신문재 교보문보장 대표 등도 파슨스를 졸업했다.

패션계뿐 아니라 예술계,학계,미스코리아 등 패션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직종마다 파슨스 출신들이 넓게 포진해 있다. 최근 '2011 미스코리아 진'으로 선발된 이성혜 씨가 파슨스 휴학생인 것으로 알려져 더 관심을 모았다. 2007년 미스코리아 진 이지선 씨,선 박예주 씨도 이곳 동문이다.

어떤 학교기에 이렇게 유명인사를 많이 배출해내는 걸까. 영국 센트럴세인트마틴CSM,벨기에 엔트워프왕립예술학교와 함께 세계 3대 패션스쿨로 알려진 이곳은 뉴욕에서도 패션 중심지로 꼽히는 7번가와 13번가 등에 여러 동의 건물을 갖고 있다. 인근에 디자인하우스를 갖고 있는 유명 디자이너들이 직접 특강을 하고 인턴십의 기회도 많아 '패션 디자이너 명문'으로 꼽힌다.

1987년부터 3년 동안 이 학교에서 그래픽광고를 공부한 정구호 전무는 파슨스디자인스쿨에 대해 '독특하고 개성 강한 학생들이 모인 곳'이라고 말했다. "텍사스 휴스턴대에서 2년반 동안 광고예술 전공을 하다가 이곳으로 편입했는데,첫 수업 때 아무 생각없이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갔어요. 그런데 웬걸,그곳에 모인 모든 학생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듯 아래위로 검정색 옷을 입고 있더군요. " 당시 올블랙이 유행이어서 학생들이 각기 다른 디자인의 블랙 의상으로 멋을 냈다는 설명이다.

이 스쿨은 당시엔 흔치 않았던 '크리틱 수업'(학생들끼리 서로 장단점을 지적하며 토론하는 수업)을 진행했다. 정 전무는 "강의 시간에 교수가 가르쳐주는 건 아무것도 없이 과제만 내줄 뿐이었다"며 "학생들끼리 자신의 아이디어와 샘플,완제품을 평가 · 비판하는 방식으로 공부했다"고 전했다.

한인동창회도 만들어졌지만 워낙 개성이 강한 집단이라 잘 모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무는 "7~8년 전에 딱 한 번 이현우 씨와 같이 간 적이 있지만 다들 독창성과 개인 활동을 좋아하기 때문에 잘 뭉치진 않는다"고 말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