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조사방식을 고집하면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요. 우리도 답답합니다. "(환경부 관계자)

한 · 미 양국은 지난 27일 경북 왜관의 캠프 캐럴 기지 내부를 공동 조사하기로 합의했다. 주한미군이 이곳에 고엽제를 묻었다는 증언이 제기된 지 1주일 만이었다. 하지만 그뒤 취재 결과 허울뿐인 공동 조사로 드러났다. 기지 내부에 대해선 미군이 발굴 및 샘플 분석 등 모든 조사과정을 단독으로 진행하게 된다. 한국 조사단은 단지 참관만 하는 형식이다.

미군은 "고엽제를 포함해 인체에 유해한 모든 화학물질을 검사해야 한다"는 한국 측 요구도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은 2001년부터 삼성물산과 함께 공동으로 실시한 전국 미군기지 내부의 토양 · 지하수 조사 결과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 자료가 공개되면 어느 지역의 기지가 얼마나 오염됐는지를 1차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주한미군 관계자는 "들어본 적도 없고,공개할 이유도 없다"며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2001년 서울 녹사평역 지하수 오염에 대한 한 · 미 공동조사 때 한국 측 대표였던 신호상 공주대 약물남용연구소장은 "당시 미군 측은 조사방식 등 모든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자기 주장만 고집했다"며 이번 조사과정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미군은 고엽제 파문이 불거지자마자 월터 샤프 주한미군 사령관 명의로 진상 규명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예전과는 달리 신속한 대응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2년 6월 경기도 양주의 두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했을 때의 대응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미국이 2002년의 오판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이번엔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다"(국방부 관계자)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고엽제 공동 조사의 뒷면까지 실상을 살펴보면 여전히 미국은 일방통행을 고집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사태를 자초한 것은 민간인들이 인접한 기지 안에 화학물질을 묻은 미국 스스로다. 가급적 모든 조사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우리 측과 충분히 협의하는 게 순리다. 2002년 반미 촛불시위가 커졌던 것도 사태 초반 미국 측의 무성의하고 일방적인 태도에 원인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강경민 지식사회부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