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 시작한 계기는
엄마 손에 이끌려 오디션…네 살 때 'KBS 아기 노래회' 입단
신영옥씨에게 '노래'란?
제겐 신앙이자 어머니죠…곧 성가 음반도 낼 계획
'G20 회의'서 아리랑 불렀는데
다문화 가정 아이들과 공연…가슴 뭉클했던 감동의 무대
하도 시끄럽게 울어서 옆집 사람들이 달려올 정도로 목소리가 컸던 애기.초콜릿 사주겠다는 말에 솔깃해 어머니 따라 오디션을 보고 네 살 때 'KBS 아기 노래회'에 최연소로 입단한 꼬마.무용이 좋아서 걸핏하면 노래연습실을 빠져나가곤 했던 소녀.3000명이 출전한 메트로폴리탄 콩쿠르에서 "가장 뛰어난 우승자"(뉴욕타임스)라는 극찬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천상의 목소리'.
세계 최고의 리릭 소프라노로 꼽히는 성악가 신영옥씨(49)의 이력은 그의 목소리만큼 선명하고 뚜렷하다. 그는 미국 줄리아드 음대와 대학원을 마치고 남보다 늦은 스물아홉 살에 '리골레토'의 질다 역으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에 데뷔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일본에서 공연한 '사랑의 묘약'에서 파바로티의 상대인 아디나 역을 훌륭히 소화해 대성공을 거두었고 '가면무도회'에서도 오스카 역으로 지목돼 음악과 연기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 파바로티뿐만 아니라 플라시도 도밍고,호세 카레라스 등 '3테너'와 각각 공연하기도 했다.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그가 지난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무대에서 부른 '아리랑'은 또다른 감동을 선사했다.
"세계 정상 20여명 앞에서 했는데 얼굴들은 잘 안 보였어요. 무대가 좀 먼 데다 불이 꺼져 있었거든요. 어느 좌석쯤 있다고 미리 이야기는 들었는데 나중에 보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님이 보이더라고요. 반 총장님과는 2년 전 취임식 때 유엔에서 노래 부른 적이 있어서 인연이 깊죠.식사가 끝난 후 다들 피곤할 텐데 다른 정상들도 몸을 옆으로 빼가며 집중해서 공연을 보더군요. 이런 일이 몇십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데 영광스러웠죠.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공연이라 한복을 입고 나갔어요. 모두들 한복이 예쁘다고 칭찬해줬어요. '아리랑'을 부르는데 정말 가슴이 뭉클했죠.다문화 가정 아이들과 같이 불렀어요. 흑인도 있고 금발도 있고,아이들이 한국말을 너무 잘해 신기하기도 하고 너무나 귀여웠어요. "
서울 광장동 W호텔에서 만난 그의 표정은 환했다. G20 행사 전에 그는 양재동의 온누리 교회에 새벽기도를 다녀왔다고 했다. "목사님이 '신영옥을 위해 기도 드리겠다'고 했어요. G20 행사가 중요하고 매우 기대된다면서.그때 전 무언가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죠.그게 '아리랑'이었어요. "
그는 곧 '성가 음반'을 선보인다. 지난해부터 준비해왔고,크리스마스 전에 내놓을 예정이다. "녹음은 불가리아의 소피아에서 했어요. 풀 오케스트라 반주로 했죠.유니버설에서 나오는데 18곡을 담았습니다. 편곡을 색다르게 해 젊은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했는데 굉장히 시간을 많이 할애했어요. 항상 신중하지만 이번 음반은 더 그랬죠."
그는 뱃속에서부터 성가를 듣고 자랐다. "모태신앙이죠.그런데 전 너무나 부족해요. 새벽기도도 하고 언니를 비롯해 식구들 모두가 열심인데….미국에서도 학교 다니면서 장로교회에 다니며 교회 모임에 열심히 참석했어요. 목사님 말씀 듣다가 졸기도 했지만 교회에 갔다오면 마음이 편해져요. 저는 많이 부족한데 많은 사람들이 손잡고 중보기도해주는 게 감사해요. 제가 음악적 발전을 거듭한다면 그 덕분이죠."
하긴 어릴 때 그의 끼를 키운 모태도 리틀엔젤스예술단이었다. "처음엔 무용을 좋아했어요. 어머니가 풍금을 치면 옆에서 '옹달샘'을 부르곤 했는데 사실 마음은 무용에 가 있었어요. 노래 연습하다 몰래 무용단에 가 있곤 했죠.아이가 없어졌다고 경찰서에 신고한 적도 있었대요. 수험표에도 성악을 지우고 무용이라고 썼는데 어머니가 노래를 해야 한다고 해서 마음을 돌렸지요. "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이탈리아 독일 가곡이나 오페라 아리아를 공부했다. 고등학교 때는 어머니에게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불러드리기도 했다. "노래를 계속하면 어머니가 좋아했어요. 안방 문을 닫지 않고 늘 듣고 있었죠.언젠가는 노래를 한참 부르다가 어머니가 뭐하시나 하고 봤더니 노래 들으면서 울고 계셨어요. "
그는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게 늘 가슴아프다고 했다. 공연에 지장을 줄까봐 어머니가 알리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가 종종 앙코르 곡으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며 목이 메어 청중까지 울리는 배경에 어머니의 실루엣이 오버랩된다.
그에게는 애틋한 사랑이야기나 사생활이라 할 만한 이야기가 별로 없다. 일상이라 해봐야 혼신을 다해 몰두하는 연습이 전부다.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 노래를 하려거든 오로지 노래만 바라보며 수녀처럼 살아야 한다'고 했던 스승의 가르침 때문일까. 그래서 그에게 노래는 신앙이자 어머니이다.
어떻게 해야 노래를 잘할 수 있을까. 그는 어릴 때 무용을 한 경험이 크게 도움됐다고 했다. "1990년대만 해도 날씬한 성악가가 없었어요. 대부분이 뚱뚱했죠.전 무용 연습 덕분에 뛰는 것도 잘 하고 몸이 빨랐어요. 뉴욕 메트로폴리탄극장에서 제가 계단을 달려 내려오면 '나비 같다'고들 했죠.그 모습만 보고도 지휘자들이 저인지 금방 알았다고 해요. 어릴 때 KBS 어린이합창단에 다녔으니까 많은 예술가들을 보고 자란 것도 좋았어요. 피아노 배우는 것도 빨랐고….줄리아드에서는 제가 여러 레퍼토리를 이미 한국에서 연습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라더군요. 이처럼 어릴 때부터 다양한 감성을 키워주는 게 중요하지요. "
그는 또 "절대로 무리하지 말라"는 얘기를 덧붙였다.
"저는 코러스 장면을 해도 안 가르쳐준 것까지 연결해서 했어요.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안다는 칭찬도 받았죠.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악을 하면서 절대로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레퍼토리에 신중을 기해야 해요. 줄리아드에서 학생들이 헨델이나 바로크 곡하면 시시하다고 생각하던데,배울 때는 근본을 잘 터득해야 하죠.차근차근 천천히 하는 게 좋아요. 그리고 배역에 충실한 것이 좋아요. 유혹은 많죠.유명한 연출가들의 제의가 있지만 제게 맞지 않는 것을 택하면 안 되지요. 반짝해도 후유증이 있으니까요. 신영옥씨는 늘 이런 역만 하고 다른 역은 왜 안 하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지만 전 신경 쓰지 않아요. 문제는 자신입니다. 예를 들어서 오페라 서너 개로 평생 하는 거예요. 그게 스페셜리스트죠.자기 소리가 정해져 있으니까,자기 그릇에 맞게 해야 성공할 수 있지요. "
만난 사람 = 고두현 문화부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