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8개월 만에 3%대로 올라서면서 하반기 물가 불안 우려가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채소류 등 신선식품에서 시작된 물가 상승세가 다른 부문으로 파급될 것이란 불안 심리도 커지고 있다.

이미 야채를 사용하는 식당들이 음식 가격을 올리기 시작하는 등 가격 불안 요인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하반기 공공요금 인상에다 기업들의 임금 인상까지 겹칠 경우 그동안 잠복된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우려가 한꺼번에 터질 수 있다. 일각에서는 한국은행이 지난달 선제적인 금리 인상으로 물가불안을 사전에 차단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9월 소비자물가 급등에는 채소류를 비롯한 농축수산물 상승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9월 물가 상승분(전월비 1.1%) 중 농축수산물 상승으로 인한 요인(기여도)은 0.98%포인트를 기록,전체 물가 상승의 88%를 차지했다. 특히 채소류의 경우 9월 물가상승 기여도가 0.78%포인트에 달해 전체 물가 상승의 70%를 차지하면서 물가 상승을 주도했다.

채소류 가격을 포함한 신선식품지수는 전월 대비 19.5%,전년 동월 대비 45.5% 상승했다. 이는 1990년 통계집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상승한 것이다. 신선식품 중에서도 신선채소는 전월 대비 44.7%,전년 동월 대비 84.5% 각각 상승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이상 기후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으로 설명했다. "여름철 잦은 비와 태풍 곤파스 등으로 인한 채소류 작황 부진으로 일시적인 공급 부족 현상이 생겼기 때문"(윤종원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가을 배추 등이 출하되는 이달 중순 이후부터는 상황이 개선돼 물가도 제자리로 돌아올 것으로 정부는 예상했다.

정부는 특히 농산물 외에 공업제품과 개인서비스 물가가 안정적인 모습을 계속 보이고 있어 물가 불안이 지속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9월 공업제품과 서비스 물가는 전월 대비 0%대,전년 동월 대비 2%대 안정세를 보였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낙관과 달리 시장에서는 인플레 현실화를 우려하고 있다. 민간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하반기 공공요금 인상과 국제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물가 오름세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은 데다 김장철이 다가오면서 농산물 수급으로 인한 단기적인 물가 불안 역시 쉽게 잠재우기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10월 이후에도 물가가 정부의 중기 물가안정 목표인 3%를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이날 내놓은 '채소류 수급안정대책' 또한 단기 대책에 초점이 맞춰져 취약한 수급 기반을 확충하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농산물 가격 급등이 식당 등의 음식물은 물론이고 다른 업종의 가격 상승 '도미노'까지 불러올 경우 인플레이션 압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한 경제 전문가는 "한국은 시장 개방이 덜 돼 있기 때문에 한 업종의 가격 상승은 타 업종으로 순식간에 퍼진다"며 "물가안정 기조가 깨지면 경제성장률 등 거시정책 전반을 수정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