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란 인물은 유가와 도가 양대 사상을 축으로 하는 중국 사상계에서 논란의 중심에 서 있기도 하다. 흔히들 법과 원칙을 내세운 법가라고 말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는 군주의 권력을 유지하고,사람을 통제하며,심지어 신하에게 권력을 빼앗기지 않는 구체적인 사례를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동양의 마키아벨리다.
한비(기원전 280~?)는 한나라의 서자 출신 공자로 비주류의 아픔을 겪었다. 그는 순자의 문하에서 이사와 더불어 유학을 배웠다. 사방이 적국으로 둘러싸인 조국 한나라가 약소국의 비애와 굴욕을 겪는 것을 본 그는 실용적인 법가로 무장하고 한나라 왕에게 법치를 건의했으나 자신을 알아주지 않자 울분에 차 《한비자》란 책을 남겼다.
말더듬이인 그는 조국에서 일이 풀리지 않자 적국 진나라 시황제를 찾아가 유세를 하게 된다. 그러나 이에 실패하고 동문수학한 친구 이사의 부추김 속에서 살해당하고 만다. 그는 죽으면서도 자신의 사상을 고스란히 남겨 진시황의 진나라 통일과 정치의 단초를 제공했다.
그가 지은 《한비자》에 소개된 일화 중 이런 것이 있다. 위(衛)나라 사람 부부가 기도를 드리는데,부인이 축원하며 이렇게 말했다. "공짜로 베 100필을 얻게 해주십시오." 남편이 물었다. "어째서 조금만 바라오?" 그녀는 대답했다. "이보다 많으면 당신이 첩을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
한 이불을 덮고 살지만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다는 말이다. 인간의 성품은 선하지 않고 모든 것이 이해관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비유가 허를 찌른다. 그러니 한 이불 속의 부부도 아니고 피를 나눈 형제도 아닌 군주와 신하,백성과 백성 사이는 서로를 믿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심지어 풍년이 들어 나그네에게 곡식을 주는 선행도 식량이 많이 생겨 남아돌기 때문이라는 게 한비의 논리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는 한 나라의 백성을 책임진 군주는 늘 냉철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면서 이렇게 강조한다. "법에 따라 형벌을 집행하는데 군주가 이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것은 인자함을 드러내는 것이지 다스리는 것은 아니다. 눈물을 흘리며 형을 집행하지 못하는 것은 인(仁)이고,형을 집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법(法)이다. 선왕이 법을 우선하고 눈물에 따르지 않은 것은 인만으로는 백성을 다스릴 수 없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
수주대토(守株待兎).즉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리는 농부처럼 하지 말고,시대의 변화를 인정하고 오늘의 기준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라는 가르침을 제시한 한비는 감정적인 인간이야말로 가장 위험하고 믿을 수 없는 존재라고 했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 강력한 권력을 지닌 군주도 마찬가지다. "그가 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내지 않는다. 군주가 하고자 하는 바를 내보이면 신하는 그 의도에 따라 잘 보이려고 스스로를 꾸밀 것이다. "
그는 아랫사람에게 책잡힐 언행을 하지 말 것을 분명히 경고하고 있다. 신하 역시 자신의 속내를 군주에게 드러내지 말고 군주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아야 목숨을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자신은 희생됐다.
혼돈의 시대에는 자신의 속내를 숨기고 어둠 속에서 자신을 길러야 한다는 한비의 생존법은 오늘 이 시점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자세히 살펴보라.저마다 생존을 위해,퇴출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우리도 적절한 비굴과 자기 기만을 통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어차피 기업을 비롯한 조직사회에는 상하관계가 있게 마련이고,그것은 온정적인 인간관계보다는 객관적이고 냉정한 관계로 변해가고 있다. 서글프지만 이런 '악의 축'에서 자유로울 자는 누구이며,아니라고 단언할 자 누가 있겠는가. 드러내지 않는 자가 무서운 법이다.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wjkim@kony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