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이구백(20대 90%가 백수)이라더니 이젠 졸백(졸업하자 마자 백수)이란다. 실제 대학 졸업생의 절반이 백수가 된다는 마당이다. 그러니 다들 졸업을 미뤄 대학은 5년제가 됐다. 학비 대느라 부모 허리 휘어진 줄 뻔히 알면서 졸업하고도 집에 있는 당사자나 그런 자식을 보는 부모 마음은 찢어진다.

눈높이를 낮춰 취업해보니 밤낮 따로 없는 교대 근무에 구두 바닥이 녹도록 일해도 월급은 130만원 정도다. 그래도 비전만 있다면 참겠는데 일을 배워 승진할 가능성도,결혼하고 출산 후까지 다닐 가능성도 거의 없다. 결국 그만두고 스펙 높이기에 나서보지만 나이는 들고 이렇다 할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 취업하긴 더 어렵다.

"그러게 공부 잘해 좋은 대학 나오고 미리미리 준비하지" 할지 모르지만 그게 말처럼 쉬웠으면 애당초 문제될 것도 없다. 취업을 못하니 결혼은 남 얘기고 아이는 더더욱 아득하다. 그래도 이들은 낫다. 젊고 홀몸이고 어떻게든 일하자고 들면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찾을 수 있다.

청년실업 못지않게 심각한 건 40~50대 중년 실업이다. 지난해 1~5월 아르바이트 구직자 분석 결과 40~50대가 급증,2008년 상반기 대비 40대는 56.8%,50대는 70.8%나 증가했다고 한다. 딸아들과 아버지가 아르바이트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기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중년층 실업은 갈수록 급증,1월의 50대 실업자는 17만2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0만1000명)보다 70.4%나 늘었다.

40대 중반의 경우 서른살에 결혼했댔자 아이가 겨우 중학생이고 서른댓살에 결혼했으면 초등학생이다. 50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른초반에 했댔자 대학생이요,늦었으면 아직 중고생이다. 봉급이라고 받아봤자 아이들 학비에 집 장만하느라 얻은 대출이자까지 갚고 나면 남는 거라곤 없다. 이런 상황에서 그만두고 나면 노후대책은 고사하고 당장 생계 대책도 막막해지기 십상이다.

'어차피 평생직장은 없으니 인생 2막을 시작해야 한다'지만 그 역시 말처럼 간단하면 뭐가 걱정이랴.월화수목금금금에 회식까지 꼬박 참석하다 보면 자기계발은 고사하고 건강 챙길 시간도 없는 게 이 땅의 직장 생활이다. 결국 다니던 곳을 떠나면 대부분 새로운 직장은 꿈도 못 꾼다. 빚이라도 없으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중산층에서 내려앉는 건 하루 아침이다.

일자리 창출은 쉽지 않아 보인다. 취업자 수 증가율을 GDP 성장률로 나눈 고용탄력성이 90년대 0.36에서 2000년대 0.32,2008년 0.28로 낮아지고 있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설비투자 중심의 대량 생산경제에서는 더 이상 일자리 창출을 기대할 수 없다고도 한다. 실제 지난해 민간 부문의 일자리는 26만3000개나 감소했다. 사실상 실업자가 400만명에 달한 게 경제위기 때문만은 아닌 셈이다.

가장의 실업은 한 가정의 붕괴는 물론 금융부실 등 국가 경제 위기로까지 치달을 수 있다. 중 · 장년 실업문제 해결에 정부와 기업이 함께 나서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다. 직무 훈련과 재배치,취업지원 상담센터 운영은 물론 임금피크제든 근무시간 단축을 통한 임금 조정이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전직지원 서비스 확대가 필요한 것도 물론이다. 안 그러면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터질지 모른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기 어렵다면 나누기라도 해야 한다. '소수가 고강도 장시간'노동을 하는 기존 형태를 '다수가 양질의 저강도,단시간' 일자리를 나누는 방식으로 바꾸자는 게 정부 입장이라면 그에 따른 대책을 본격적으로 마련해야 마땅하다.

취업자의 발상 전환도 시급하다. 대학을 나왔으니 연봉은 얼마가 돼야 한다든가 지금까지 얼마를 받았으니 얼마는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부가 만드는 자료를 보면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고 취업자 역시 적극적이지 않은 것 같다는 대통령의 얘기도 그런 뜻일 것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