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세종시 문제로 시끄럽다. 집안싸움이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심 얻기 경쟁을 벌여도 모자랄 판에 동료들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세종시 수정을 둘러싼 친이 · 친박의 대결은 마치 기관차가 서로 마주보고 달리는 형국이다. 당 대표로서 세종시 원안 통과를 주도했던 박근혜 전 대표는 '원안대로'를 강조하며 꿈쩍도 안한다. 명분은 신뢰다. 이명박 대통령과 친이 측의 접근법은 전혀 다르다. 애당초 세종시 건설 계획 자체가 대선에서 표를 얻기 위한 정략에서 비롯됐다는 인식이 출발점이다. 행정부처 분산은 엄청난 비효율과 함께 실패로 끝났다는 게 이미 세계적으로 입증된 마당에 그 전철을 밟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양측 모두 일리가 있다. 친박은 과거의 약속에,친이는 미래의 비전에 무게를 싣는다. 여론도 팽팽하다. 세종시 문제는 선과 악의 문제는 아니다. 누가 옳고 그름의 문제도 아니다. 국가와 충청권을 위해 무엇이 최선인지를 결정하는 정치적 선택의 문제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게 아니라 정말 치열하게 논쟁을 벌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여권의 양 계파는 세종시 문제가 불거진 후 몇 달이 지났지만 진지한 대화 한번 없었다. 여론을 통한 비방전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대정부 질문에서도 정부를 비판하는 여 의원들의 목소리가 더 크다. 심지어 이 문제를 터놓고 얘기해보자며 총리가 마련한 점심자리에 친박인사들이 집단 불참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그것도 모자라 이젠 지도부까지 뒤엉켜 싸우는 집단 레슬링을 연상케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운찬 총리,정몽준 대표가 한편이고 반대편엔 사실상 당내 최대주주인 박근혜 전 대표가 서 있다. 박 전 대표는 차기 유력 대선 후보다. 현재 독주 태세다. 말 그대로 미래권력이다. 결국 세종시 갈등이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싸움으로 변질된 것이다.

결과에 따라서는 한쪽이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박 전대표의 벽에 막혀 세종시 수정안이 백지화된다면 이 대통령은 여권 장악력이 떨어지면서 국정운영의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 거꾸로 박 전 대표가 백기를 드는 상황이 온다면 차기 가도에 빨간불이 켜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양측이 사활을 거는 이유다.

이런 맥락에서 양측은 완승 완패는 피하려 할 것이다. 친이 측은 통과가 담보되지 않는 한 표결을 피할 게 분명하다. "수정안 처리가 안 될 경우 차기 정부가 세종시 원안추진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라는 얘기가 여권 핵심관계자 입에서 나온 건 그런 맥락에서다. 친박은 방어하는 입장인 만큼 행동에 나설 여지가 없다. 세종시 문제가 장기 표류할 것이라는 분석은 그래서 나온다.

그렇다고 무한정 이 문제를 방치하는 건 정도가 아니다. 국민에 대한 결례다. 이런 갈등을 해소하지 못할 정도라면 당내 일각의 주장처럼 차라리 갈라서는 게 맞다. 그런 생각이 없다면 머리를 맞대야 한다. 각기 자신의 입장을 강요하는 건 정치가 아니다. 한 발짝씩 양보하면 타협점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택해야 한다.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최악을 피해 차악을 택하는 게 정치다. 수정안에 정부부처 2개 정도를 가미한 안은 적어도 이에 부합한다. 이 정도의 타협도 이뤄내지 못한다면 여권의 설 자리는 없다.

이재창 정치부장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