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벤처캐피털업계에서 '서갑수'란 이름은 그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기술투자(KTIC)보다 더 높은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2000년 이후 벤처거품이 꺼지면서 서 회장과 그가 설립한 KTIC 위상이 예전만 못하지만,국내 벤처산업에 기여한 그의 공로는 크다. 1986년 국내 최초 창업투자사로 출발한 이 회사는 지금까지 500여개 국내 벤처기업에 투자,NHN 마크로젠 메가스터디 등 130개 기업이 국내외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데 산파 역할을 했다.

이런 서 회장이 요즘 외국계 투자회사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2008년 KTIC의 지주회사(KTIC홀딩스)설립 때 250억원을 투자했던 일본계 투자회사 SBI코리아홀딩스가 투자실패 등 서 회장 일가의 경영책임을 물어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KTIC홀딩스 지분 60%를 갖고 있는 SBI 측은 지난해 말 임시주총을 열어 서 회장의 아들인 서일우 KTIC홀딩스 대표를 해임한 데 이어 추가로 KTIC 주식을 매집,최대주주로서 경영권 확보의 유리한 고지에 올라섰다. SBI 측은 오는 3월께 정기주총에서 표대결로 적대적 M&A에 마침표를 찍을 계획이다. 이에 대해 서 회장도 SBI 측과 KTIC 임원 등을 주가조작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한편 우호세력을 모아 반격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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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3월 주총까지 시간적 여유가 없는 데다 거대 외국계 자본에 맞서는 일이 쉽지는 않다는 게 주위의 관측이다. 한때 9%대였던 서 회장의 KTIC 지분은 현재 4% 선으로 줄어든 상태다.

20년 남짓한 국내 벤처캐피털사(史)에서 첫 적대적 M&A로 기록될 KTIC 사태에 대해 업계는 국내 벤처캐피털의 원조격인 KTIC의 경영권 향배에 대한 관심과 함께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적대적 M&A결말이 자칫 국내 벤처산업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업계는 2년 전 우호적 파트너로 시작한 서 회장과 SBI 측의 화해와 협상이 파국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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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의 공격적 M&A에 대한 업계 정서를 차치하고라도,서 회장이 20여년간 쌓아온 국내외 인맥과 투자 노하우를 사장시켜서는 KTIC에도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손성태 과학벤처중기부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