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억달러의 원전수주 낭보가 전해졌을 때 우리나라 국회는 점거 중이었다. 원전수주가 이명박 대통령이 나서 뒤집은 '역전드라마'는 아닐 것이다. 그만큼 우리기업의 경쟁력이 높았기 때문이다. 초일류 기업과 3류 정치의 뚜렷한 대비가 아닐 수 없다.

헌법 41조는 국회의원의 수를 '200인 이상'으로 정하고 있다. 현재 국회의원 수가 299명이므로 헌법이 정한 최대 규모를 선택한 것이다. 적정 국회의원 수를 따지는 것은 쉽지 않지만,국회가 비대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인구 규모 그리고 국회의원 수를 감안할 때,아무리 낮게 잡아도 한국의 국회의원은 미국의 3배가 넘는다. '고비용 저효율'의 국회는 구조화됐다.

4대강 정비 사업에 발목 잡힌 18대 국회는 예산심사와 관련해 최악의 각종 기록을 쏟아내고 있다. 예결위가 예산안 의결 '법정기한'을 넘기고 비로소 예산심사에 착수한 것은 1990년 이후 19년 만에 처음이다. 야당의 예결위 점거는 29일 현재 13일째로 역대 최장 농성기록(1985년 신민당 4일)을 훌쩍 넘었다. 이 와중에 '계수조정소위'가 구성될 리 없다. 예결위 점거를 풀고 설령 계수소위를 구성한다 하더라도,계수소위 제도가 시작된 1964년 이래 가장 늦게 계수소위를 구성한 것으로 기록될 것이다. 연내 예산안 처리가 무산되면,사상 초유의 '준(準)예산' 편성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

예산처리 지연의 진원지는 4대강 정비사업을 둘러싼 여야 갈등이다. 민주당은 4대강 사업을 '의심의 눈'으로 보고 있다. 표방하는 반대 논리는 '4대강 사업의 졸속 추진'을 막겠다는 것이다. 환경영향 평가와 예비타당성 조사가 부족하거나 생략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야당이 정작 우려하는 바는 다른 데 있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정비 사업을 임기 내 완공 또는 그에 준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렸을 때 미치는 파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 '제2의 청계천 신화'로 비쳐져 2012년 대선에서 야당에 악재(惡材)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정치계산'이 그것이다. 따라서 4대강 정비를 대운하의 '전초전'으로 몰아 사업 자체를 축소시키거나 순연시키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민주당의 속내는 복잡하다.

민주당의 의심대로,여당이 4대강 정비를 대운하의 전초기지로 삼았다면,그리고 2012년 대선에서의 득표를 위해 '정치적 동기'에서 역사(役事)를 벌였다면 결국 진실은 밝혀질 것이고,유권자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어떠한 논거에 근거해 4대강 정비에 반대했는지 '기록'을 정확히 남기고,4대강 정비사업의 책임소재를 분명하게 하는 것이다. "법안에는 반대하지만 법안 처리까지 반대하진 않는다"는 미국의회 정치에서 배워야 한다.

3조5000억원의 4대강 예산 때문에 292조원의 예산이 심의되지 않은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예산안 의결의 법정시한을 '법률'이 아닌 '헌법'으로 규정한 이유를 곱씹어봐야 한다. 예산은 기본적으로 국민이 낸 세금이고 예산집행은 국민의 세금을 국민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산안이 처리되지 않았을 때의 피해자는 국민이다. '준예산'이 편성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에게 돌아간다.

국회폭력은 다수결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수결 원칙은 '불일치에 대한 합의'를 뒤집어 놓은 것이다. 정권창출은 '콘텐츠'에 기초한 '설득의 경쟁'이다. '대안세력'으로 야당이 거듭날 때 정권교체가 가능하다. 하지만 전투성이 대안세력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정파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국회 행태에 국민은 실망할 뿐이다. 국민의 분노를 사는 '죽은 국회'.그 존재이유는 무엇인가.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