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손실 책임공방…"법원도 오락가락"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지난해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불거졌던 금융상품의 손실문제가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법원은 '파생상품에 대한 손실은 그 상품에 투자한 투자자들의 책임'이라는 기존의 판결을 뒤집고 '운용사와 수탁사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며 투자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판결은 같은 법원(서울중앙지법)에서 같은 금융상품(우리 투스타파생상품 투자신탁 KW-8호)에 대해 이루어진 다른 판결이어서 주목된다. 이 펀드의 운용사인 우리자산운용과 수탁사인 하나은행은 항소할 뜻을 밝힌 상태다.
'우리 투스타파생상품 KW-8'는 우리금융지주와 한국전력의 주가 수준에 따라 수익이 연동되는 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한 주가연계펀드(ETF) 상품이다. 총 980여명에게 280억원 어치가 판매됐고, 현재 3건의 소송이 모두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중이다. 총 소송액수만도 117억7000만원에 달한다. 1건은 원고가 패소한 후 항소로 2심을 진행하고 있고, 나머지 1건은 1심에 계류중이다.
◆법원, "투자처 변경, 펀드손실 배상해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6부(임범석 부장판사)는 지난 20일 주가연계펀드(ELF)에 투자했다 투자금을 모두 날린 강모씨 등 218명이 낸 투자금반환 청구소송에서 "펀드 운용사인 우리자산운용과 수탁사인 하나은행은 손해액 61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강 씨 등은 2007년 6월 우리자산운용의 ELF인 '우리2스타 파생상품KW-8호'가 해외 금융사인 BNP파리바가 발행하는 장외파생상품(ELS)에 투자하는 상품으로 알고 투자했다. 그러나 운용사가 임의로 거래처를 미국 리먼브러더스로 바꾼 뒤 글로벌 금융위기로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투자금을 전액 날리게 됐다며 소송을 냈다.
원고 측은 투자원금을 손해액으로 간주해 76억1000만원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손해액을 리먼브러더스가 아닌 BNP파리바로 유지할 경우를 가정해 변론종결일(2009년 9월21일) 기준 투자원금의 81.039%가 보존됐을 것으로 추정해 61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추정 손해액에 대해 100%를 배상하라는 판결은 국내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법원은 그동안 금융위기 이후에 펀드 관련 소송에서는 배상 범위를 주로 손해액의 50% 내외에서 제한해왔다.
그렇지만 앞서 열린 비슷한 소송에서는 판결 결과가 달랐다. 지난 5월2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16부(정호건 부장판사)는 투자자 52명이 제기한 17억9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기각했다. 이에 투자자들인 원고는 2심을 항소했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투자설명서에 '거래 상대방(발행사)을 임의로 변경하지 못한다'는 제한 내용이 없었다"며 "이는 자산운용사가 투자 수익을 위해 거래 상대방을 임의로 변경할 수 있는 재량이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사유를 설명했다.
비슷한 사안에 대한 판결이 6개월여 만에 다르게 난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나머지 계류중인 소송은 물론이고, 아직 공개되지 않은 이번 판결문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 지 관련 업계는 물론 투자자들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업계, "선례 남기지 않겠다"…대응입장 밝혀
누구보다 초조한 장본인은 우리자산운용이다.
우리자산운용은 이날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갖고 "'우리 투스타파생상품 KW-8호'에 대한 1심 판결결과 동일 법원에서 2건의 재판결과가 다르게 나왔다"며 "판결문이 도착하는대로 정확한 판결이유를 분석하고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우리자산운용의 법률대리인인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ELS 발행사를 BNP파리바에서 리먼브러더스로 약관에 위배되는 사항은 아니다"라며 "자산운용사로서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며 지난 5월 있었던 판결에 동의한다는 뜻을 전했다.
조 변호사는 "자산운용사들은 수익자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아도 거래상대방을 변경할수 있는 재량이 있다고 판단된다"며 "판결문을 입수해 검토한 후 항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리자산운용은 리먼브라더스로 발행사를 변경한 후 인터넷과 운용보고서를 통해 변경을 고지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정철 우리자산운용 대표는 "판결문을 봐야 알겠지만 업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며 "운용에 대한 자율권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적 책임과 별도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위로금을 지급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지주회사의 의견을 구해 추후 그룹 차원에서 결정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또한 수탁은행인 하나은행도 항소할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수탁사는 운용사가 약관이나 법령을 위반했는지에 대한 여부만 감독할 수 있다"며 리먼브라더스로 변경할 당시에는 신용등급 등의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번 판결로 관련 업계는 또 한번의 홍역을 치를 것으로 예상된다.
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추정손해액 개념을 도입해 배상판결을 냈다. 때문에 소송을 진행중인 다른 투자자들도 이 개념을 도입해 소송액을 재산정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50%의 배상판결을 받은 투자자들은 소송액을 높여 항소할 가능성도 있다.
운용사와 수탁사와의 책임 배분 문제도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문에서 우리자산운용과 하나은행의 손해액이 명시된다면, 운용사와 수탁사가 얼마나 책임을 져야하는가에 대한 논란도 불거질 전망이다.
한경닷컴 김하나 기자 hana@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법원은 '파생상품에 대한 손실은 그 상품에 투자한 투자자들의 책임'이라는 기존의 판결을 뒤집고 '운용사와 수탁사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며 투자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판결은 같은 법원(서울중앙지법)에서 같은 금융상품(우리 투스타파생상품 투자신탁 KW-8호)에 대해 이루어진 다른 판결이어서 주목된다. 이 펀드의 운용사인 우리자산운용과 수탁사인 하나은행은 항소할 뜻을 밝힌 상태다.
'우리 투스타파생상품 KW-8'는 우리금융지주와 한국전력의 주가 수준에 따라 수익이 연동되는 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한 주가연계펀드(ETF) 상품이다. 총 980여명에게 280억원 어치가 판매됐고, 현재 3건의 소송이 모두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중이다. 총 소송액수만도 117억7000만원에 달한다. 1건은 원고가 패소한 후 항소로 2심을 진행하고 있고, 나머지 1건은 1심에 계류중이다.
◆법원, "투자처 변경, 펀드손실 배상해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6부(임범석 부장판사)는 지난 20일 주가연계펀드(ELF)에 투자했다 투자금을 모두 날린 강모씨 등 218명이 낸 투자금반환 청구소송에서 "펀드 운용사인 우리자산운용과 수탁사인 하나은행은 손해액 61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강 씨 등은 2007년 6월 우리자산운용의 ELF인 '우리2스타 파생상품KW-8호'가 해외 금융사인 BNP파리바가 발행하는 장외파생상품(ELS)에 투자하는 상품으로 알고 투자했다. 그러나 운용사가 임의로 거래처를 미국 리먼브러더스로 바꾼 뒤 글로벌 금융위기로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투자금을 전액 날리게 됐다며 소송을 냈다.
원고 측은 투자원금을 손해액으로 간주해 76억1000만원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손해액을 리먼브러더스가 아닌 BNP파리바로 유지할 경우를 가정해 변론종결일(2009년 9월21일) 기준 투자원금의 81.039%가 보존됐을 것으로 추정해 61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추정 손해액에 대해 100%를 배상하라는 판결은 국내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법원은 그동안 금융위기 이후에 펀드 관련 소송에서는 배상 범위를 주로 손해액의 50% 내외에서 제한해왔다.
그렇지만 앞서 열린 비슷한 소송에서는 판결 결과가 달랐다. 지난 5월2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16부(정호건 부장판사)는 투자자 52명이 제기한 17억9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기각했다. 이에 투자자들인 원고는 2심을 항소했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투자설명서에 '거래 상대방(발행사)을 임의로 변경하지 못한다'는 제한 내용이 없었다"며 "이는 자산운용사가 투자 수익을 위해 거래 상대방을 임의로 변경할 수 있는 재량이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사유를 설명했다.
비슷한 사안에 대한 판결이 6개월여 만에 다르게 난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나머지 계류중인 소송은 물론이고, 아직 공개되지 않은 이번 판결문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 지 관련 업계는 물론 투자자들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업계, "선례 남기지 않겠다"…대응입장 밝혀
누구보다 초조한 장본인은 우리자산운용이다.
우리자산운용은 이날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갖고 "'우리 투스타파생상품 KW-8호'에 대한 1심 판결결과 동일 법원에서 2건의 재판결과가 다르게 나왔다"며 "판결문이 도착하는대로 정확한 판결이유를 분석하고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우리자산운용의 법률대리인인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ELS 발행사를 BNP파리바에서 리먼브러더스로 약관에 위배되는 사항은 아니다"라며 "자산운용사로서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며 지난 5월 있었던 판결에 동의한다는 뜻을 전했다.
조 변호사는 "자산운용사들은 수익자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아도 거래상대방을 변경할수 있는 재량이 있다고 판단된다"며 "판결문을 입수해 검토한 후 항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리자산운용은 리먼브라더스로 발행사를 변경한 후 인터넷과 운용보고서를 통해 변경을 고지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정철 우리자산운용 대표는 "판결문을 봐야 알겠지만 업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며 "운용에 대한 자율권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적 책임과 별도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위로금을 지급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지주회사의 의견을 구해 추후 그룹 차원에서 결정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또한 수탁은행인 하나은행도 항소할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수탁사는 운용사가 약관이나 법령을 위반했는지에 대한 여부만 감독할 수 있다"며 리먼브라더스로 변경할 당시에는 신용등급 등의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번 판결로 관련 업계는 또 한번의 홍역을 치를 것으로 예상된다.
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추정손해액 개념을 도입해 배상판결을 냈다. 때문에 소송을 진행중인 다른 투자자들도 이 개념을 도입해 소송액을 재산정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50%의 배상판결을 받은 투자자들은 소송액을 높여 항소할 가능성도 있다.
운용사와 수탁사와의 책임 배분 문제도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문에서 우리자산운용과 하나은행의 손해액이 명시된다면, 운용사와 수탁사가 얼마나 책임을 져야하는가에 대한 논란도 불거질 전망이다.
한경닷컴 김하나 기자 ha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