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바쁜 현대인의 일상을 반영하듯 지금까지 온라인 게임에서도 승패의 기본은 스피드였다.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적을 물리치고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전형적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느릿느릿 여유로움을 즐기는 새로운 스타일의 온라인 게임들이 나타나 눈길을 끌고 있다. 바쁜 일상 속에 취미생활인 게임마저 바쁘게 하면 얼마나 스트레스받는 일이겠는가. 여유롭고 평화롭게 일탈을 즐길 수 있는 신선하고 감성적인 게임들이 게이머의 눈길을 끄는 것은 이 때문이다. 느긋하고 평화롭게,소소한 것들이 선사하는 즐거움과 감동을 놓치지 않는 '슬로 라이프'.이를 표방한 게임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여유롭게 극지방 즐기는 '허스키 익스프레스'

알래스카에서나 볼 법한 설원에서 썰매견들과 함께 생활을 한다면? 넥슨의 데브캣 스튜디오가 개발한 온라인 게임 '허스키 익스프레스'의 배경 설정이다. 온라인 게임 최초로 '개썰매'라는 신선한 소재를 차용한 이 게임은 새로운 소재만큼이나 타 게임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감성적인 느낌의 플레이를 가능케 한다.

게이머는 폭설로 인해 위험에 처할 뻔한 아기 강아지를 구출하며 머셔(썰매꾼)로서의 첫 여정을 시작한다. 게임을 하면서 자신이 직접 성장시킨 썰매견들과 한 팀이 돼 극지방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교역과 채집을 통해 경제활동을 하며 생활하게 된다.

갓 태어난 강아지에게 정성스럽게 우유를 먹여야 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설원 위를 뒤뚱거리며 행진하는 펭귄 무리의 모습을 사진에 담을 수도 있다. 특가 찬스를 이용해 구입한 상품을 좋은 값에 판매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소소하지만 게임 속 설원의 삶을 유쾌하고 여유롭게 만들어주는 신선한 시도들이 담겨 있다.

이와 같이 폭력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는 대신 아름다운 세계 속에서 아기자기하게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요소를 대거 도입한 '허스키 익스프레스'는 아날로그 만화를 연상케 하는 카툰풍의 그래픽과 감성적인 전개로 여성 유저를 중심으로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지난 8월11일 공개서비스를 시작한 이 게임은 첫 주에 가입자 20만명,동시접속자 1만명을 돌파하는 등 순항 중이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레이싱 게임,'졸리 타이밍'

도리게임즈가 개발하고 한게임이 서비스하는 '졸리 타이밍'은 어릴 적 동네 친구들과 함께 즐기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소재로 한 캐주얼 게임이다. 즐거운,명랑한(Jolly)의 의미를 살려 쉽고 유쾌하게 즐길 수 있도록 고안한 '졸리 타이밍'은 만화책이나 낙서장을 연상케 하는 투박한 그래픽과 전봇대,학교 운동장,골목길과 같은 배경으로 유저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플레이 방식도 타이밍에 잘 맞추어 '술래'까지 빨리 도착해야 하지만 '스피드'가 승패의 관건이 되는 기존 레이싱 게임과 달리 너무 빨리 움직이려고 하면 넘어지거나 되레 느려지기도 한다. 이 외에도 방귀로 다른 유저를 방해할 수 있는 '고구마',힘을 증가시켜 주는 '달고나' 등 직관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아이템들이 게임의 즐거움을 더한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레이싱 게임을 표방하는 '졸리 타이밍'은 유저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소재로 비공개 테스트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올해 말 공개 서비스를 예정하고 있다.

일본 여성 사로잡은 '놀러오세요,동물의 숲'

닌텐도DS 유저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놀러오세요,동물의 숲'은 닌텐도DS의 게임 중 세계적으로 밀리언셀러를 달성한 83종의 게임 가운데 대표작으로 기록된 타이틀이다.

평화로운 마을에서 여러 동물 친구들과 관계를 맺으며 생활하는 내용의 이 게임에서는 해치워야 할 몬스터도 없고 달성해야 할 목표도 없다. 다만 유유자적 자기 나름대로의 라이프 스타일대로 그 안의 생활을 즐기면 되는 것.기존 게임들이 추구하는 '전투'와 '경쟁'의 요소를 배제한 이 타이틀은 그 신선함과 아기자기함으로 게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던 여성,특히 주부층까지 사로잡았다.

치열한 전투와 경쟁에 지친 당신을 위한 쉼터,'슬로 게임'

'한 템포' 느린 게임들의 공통점은 일반적인 게임에서 제공하는 치열한 전투와 경쟁을 통한 성취감보다 과정에 몰입해 얻어지는 아기자기한 즐거움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감성적인 요소들이 중요시되며 이를 통해 플레이어는 기존 전투형 게임이 제공할 수 없는 포근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 같은 부류의 게임이 여성이나 어린 유저들에게 인기를 얻는 것도 이 때문이다. 허스키 익스프레스의 최문영 디렉터는 "우리의 현실세계와 마찬가지로 게임에서도 소소한 일상의 잔잔한 감동이 주는 즐거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종류의 게임은 전투를 통해 쟁취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존재를 확인하고 관계를 형성하는 것에서 새로운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