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만난 경극… '태풍'을 몰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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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극감독, 연극연출 데뷔작 '태풍'
내달 국립극장서 한국팬에 인사
내달 국립극장서 한국팬에 인사
"제가 '태풍'을 택한 게 아니라 '태풍'이 저를 선택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셰익스피어 팬들과 경극 팬들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 영화감독으로서의 나의 경험은 모두 버렸죠.영화가 아닌 연극으로 한국 관객을 만나게 돼서 기대가 큽니다. "
영화 '영웅본색''천녀유혼''황비홍'등으로 유명한 홍콩 영화계의 대부 서극 감독(쉬커 · 59)이 다음 달 초 첫 연극 연출작 '태풍'을 한국 무대에 선보인다. '태풍'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를 중국의 전통연희 양식인 경극을 바탕으로 연출한 음악극.이 작품은 오는 9월 초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리는 제3회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9월4일~11월4일)의 개막작으로 초청받았다.
지난 4월부터 중국에서 영화 '적인걸' 촬영에 한창인 그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서극 감독은 "오랫동안 친분을 맺어온 영화배우 우싱 꾸오가 어느 날 연극 연출에 관심이 있느냐며 밤늦게 전화를 걸어왔다"며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하겠다'고 답했다"고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그때가 2004년.두 사람은 '태풍'을 공동 연출해 중국 전역에서 공연했다.
영화감독이 아닌 연극 연출가로서 그가 바라본 '태풍'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는 "'태풍'은 머나먼 과거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임과 동시에 유머와 냉소로 우리 시대에 경종을 울리는 위대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희곡 '템페스트'는 밀라노 영주인 프로스페로가 동생 안토니오와 나폴리 왕 알론조에게 배신당해 딸 미란다와 함께 추방되고 마법의 힘을 이용해 이들에게 복수를 꿈꾸다 결국 모두 용서하고 화해한다는 줄거리다.
그는 "'태풍'은 서구가 세계 식민지 활동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탄생했기 때문에 노예 문제 등 갈등이 나타나지만,서민과 귀족 간 평화적 공존을 이루는 유토피아도 담겨 있다"며 "특히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 가운데 사랑과 용서가 으뜸이란 점도 지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대 사회에서 나타나는 사람 사이의 갈등과 화해가 담겨져 있어 고전이지만 미래와 소통할 수 있는 요소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영화 감독으로 유명한 그가 연극 연출을 하기가 마냥 쉽지만은 않았을 터.서극 감독은 "서구 문명에 뿌리를 둔 원작의 힘과 경극이라는 무대 언어를 연결시키는 작업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듯 균형을 잘 잡아야 하는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그러나 "연극은 관객을 앞에 두고 공연하는 만큼 관객의 반응까지도 극의 리듬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태풍'을 읽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면서도 "연출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랐지만 꾸오씨와 호흡을 맞춰 좋은 창조물을 냈다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태풍'이 서양의 연극 요소들을 중국의 경극과 곤극,대만 민속 가무악으로 잘 풀어냈다는 평가가 나오는 건 이래서다.
그는 '태풍'의 연출과정에서 "영화의 기술적인 수법 이외에도 심리적인 효과까지 연극에 활용할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또 "경극은 영화와는 달리 관객의 상상력을 많은 부분 다루며,극 중 여러 암시를 통해 분위기나 감정,환경과 사건을 알 수 있다"고 영화와 연극의 차이를 설명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1993년 그의 영화 '청사'에 출연한 이후 오랜 우정을 쌓아왔던 공동연출자 꾸오씨가 주인공 '프로스페로'를 연기한다.
특히 영화 '와호장룡'과 '영웅본색' 등에 참여했고,2001년 영국아카데미어워드 베스트 의상디자인상을 비롯해 오스카상 등을 수상한 미술감독 예친톈이 의상과 무대를 맡아 화려한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02)2280-4115~6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