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와 우 이념을 둘러싸고 공방전이 치열하다. 정부가 갑작스레 중도론을 들고 나왔으니 이념 그룹들의 당혹감도 이해할 만하다. 좌편향 라디오 프로를 진행하는 모 코미디언이 "내가 왜 좌파냐"고 볼멘 소리를 했다는 것이니 좌우 논쟁도 개그 소재에 오른 지 오래다. 또 광우병 조작으로 유명한 방송의 한 사회자가 "나는 좌파가 아니라 인본주의자"라고도 했다지 않은가. 재미있는 것은 우파는 자신을 우파라고 인정하는 데 반해 대부분의 좌파는 자신이 좌파라는 사실을 모르거나 애써 부인한다는 점이다. 레드 콤플렉스 탓만은 아닐 것이다. 우파는 좌파를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좌파는 스스로를 가치 지향적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일반적이다. 우리나라뿐만도 아니다.

유럽에서 진보와 보수를 가른다면 18세기 에드먼드 버크와 토머스 페인이 그 원조다. 프랑스 혁명이 인류에 새로운 빛을 주었다고 주장하는 페인에 대해 쓰레기 잡탕들의 광기일 뿐이라고 응수했던 버크의 논변은 실로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기념비적 이정표다. 버크는 무질서한 급진적 열정이 군사독재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결국 나폴레옹 독재가 등장했고 19세기 전반기 내내 유럽은 피비린내로 진동했었다. 인권 문제도 언제나 논란이었다. 공리주의적 국가운영이 있을 뿐 나무로 만든 말에 올라타 야호소리를 질러댄다고 인권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고 공박한 제레미 벤담에 이르면 논쟁의 기초는 이미 확고하다. 몇 가지 자가진단 기준을 제시해본다.

시장경제가 정의로운 체제라고 생각한다면 우파다. 그러나 약탈이며 약육강식의 체제라고 생각한다면 좌파다. 국가의 개입이 공익을 증진시킨다고 주장하면 좌파가 분명하고 국가 아닌 시장이 결과적으로 공익을 증진시킨다고 생각하면 우파다. 국가가 국민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면 좌파지만 국가가 내 밥그릇을 책임질 경우 결국에는 나의 자유도 가져갈 것이라고 본다면 우파가 된다. 세계 금융위기가 시장경제의 필연적 결과라고 생각하면 좌파이며 정부의 포퓰리즘과 화폐 타락의 결과라고 본다면 우파다. 임금을 투쟁의 결과라고 본다면 좌파가 되고 노동활동,다시 말해 생산성의 결과라고 본다면 우파다. 거리 폭력에 대해 관용적이면 좌파요 법치주의면 우파다.

산업활동을 중단시키지 않으면 지구환경은 파괴될 것이라고 본다면 좌파요, 가난한 나라의 강물이 깨끗할 수 없으며 과학기술을 통해 환경문제도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면 우파다. 지식재산 보호법이 인류 공동의 자산을 사유재산으로 만들어 특혜를 주는 악법이라고 본다면 좌파요, 역으로 개인의 지식을 인류 복지에 기여하도록 장려하는 법이라고 본다면 우파다. 자유가 인간의 본질적 가치라면 우파이며 복지가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좌파다. 민주주의를 기회의 평등이라고 본다면 우파요 결과적 평등의 체제라고 보면 좌파다. 현실을 천국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우파요 지옥에 가깝다고 생각하면 좌파다.

이들 기준은 보편적이어서 세계적으로도 다를 것이 없다. 한국에서만 작용되는 세 가지 기준이 더 있다. 집단지성이 투표소와 시장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하면 우파요, 거리에 쏟아져 나온 시위군중의 지혜라고 주장한다면 좌파다. 한국 현대사를 성공의 역사라고 보면 우파가 되고 오욕의 실패한 역사라고 본다면 좌파다. 김정일 체제로는 동포의 인권도 없다고 생각하면 우파요 북한 인권은 자기들이 알아서 할 문제라고 보면 좌파다. 정신의 미성숙과 가치판단의 이중성을 반영하는 재미있는 기준이다. 하나 더! 다소 어려울 수도 있는 항목이지만 명사형 관념어를 좋아하면 좌파요 동사를 좋아하면 우파다. 독자 여러분의 이념 정향은 무엇인지 항목별로 O,X 숫자를 세어 보시라.

정규재 논설위원 경제교육연구소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