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새벽 경남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는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오전 7시가 지나면서 참여정부 시절의 각료들과 측근들이 속속 나타났다. 모두가 무거운 표정이었다. 오전 7시42분 김경수 비서관과 수행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여행용 가방과 양복케이스를 들고 노 전 대통령이 타고갈 버스로 향했다. 갈아입을 양복과 간단한 준비물을 싣는 듯했다.

노 전 대통령이 사저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오전 7시57분.감색 양복에 회색 넥타이 차림이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다시 사저 안으로 들어가 1분간 머물다 나왔다. 나중에 한 측근은 울고 있는 권 여사를 달래기 위해 다시 들어갔다고 전했다. 그리고 7시59분 노 전 대통령은 문재인 변호사(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측근들과 계단을 내려와 사저 안에 대기 중이던 승합차에 올랐다. 이때까지만 해도 노 전 대통령은 평상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포토라인까지 이동한 뒤 승합차에서 내릴 때에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기자들과 지지자들 앞에서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어… 국민 여러분께 면목이 없습니다. 실망시켜 드려 죄송합니다. 가서… 잘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세 마디로 검찰에 출석하는 소회를 밝혔다. 시원시원하게 말하는 것으로 유명한 노 전 대통령이지만 말을 시작하기 전에 "어…"라고 했고,중간에 다시 "가서…"라며 정확하게 말을 잇지 못했다.

짧막한 소회의 말을 마치고 돌아서는 전직 대통령의 눈시울은 엷게 붉어졌다. 그리고 고개를 떨구는 순간 울먹이는 표정을 보이기까지 했다.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조차 "그런 표정은 처음 봤다"고 했다.

그는 타고갈 버스에 오르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듯 다시 한번 씁쓸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상고를 졸업한 뒤 사시 합격→인권 변호사→5공 청문회 스타(13대 국회의원)→15 · 16대 국회의원 선거 낙선→사업 실패 등 드라마 같은 인생 역정을 거쳐 대통령 자리까지 오른 노 전 대통령.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그의 인생 드라마가 비극으로 끝나 버릴지도 모르는 데 대해 깊은 회한을 느끼는 듯했다. 노 전 대통령을 태운 버스는 지지자들 수백명이 노란풍선과 노란색 장미로 물들인 봉하마을을 천천히 빠져나갔다.

노 전 대통령과 일행은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검찰조사와 관련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대신 마음을 가볍게 하기 위해 취미와 살아가는 얘기 등을 나눴다고 문재인 변호사는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정문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19분.예정시간보다 10분 정도 빨리 도착한 노 전 대통령 일행은 잠시 차에 머물다 1시21분 하차했다. 노 전 대통령의 표정은 출발 당시보다는 나아보였다. 억지로 밝은 표정을 지으려고 애쓰는 모습이었지만 어색했다. 그렇지만 본인은 어떻게든 결연한 각오를 보이려는 듯했다.

포토라인에서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이 "출발할 때 왜 '국민에게 면목없다'고 했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잠시 씁쓸한 웃음을 지은 뒤 "면목 없는 일이죠"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100만달러의 용처' 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그는 "다음에 하시죠" "다음에 합시다"라고만 짧게 대답한 뒤 청사 안으로 사라졌다.

조성근/부산=김태현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