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사이드] 돈과 권력의 은밀한 공생…5년마다 '리스트 공화국' 되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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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이지 않는 정치자금 비리
지역구 사무실 유지비 月500만원…의정보고서 2~3만부 1000만원
정치활동에 '고비용' 비즈니스
지역구 사무실 유지비 月500만원…의정보고서 2~3만부 1000만원
정치활동에 '고비용' 비즈니스
'정치의 필수 요소 3가지는? 돈,금전,그리고 자금.'
정치인과 돈의 관계를 말해주는 미국 정가의 우화다. 정치와 돈을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는 의미다.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박연차 리스트'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간 상대적으로 깨끗할 것으로 여겨졌던 정치인들이 리스트에 오른 것으로 알려지면서 새삼 정치인과 불법 정치자금의 함수관계에 관심이 집중된다.
◆불법 정치자금 왜 되풀이되나
박연차 리스트에 거론된 정치인은 정당과 지역,정치경력을 초월한다. 정치인 누구도 돈의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는 방증이다. 불법 정치자금의 역사는 깊다. 13대부터 정치를 해온 한 전직 의원은 "10여년 전만 해도 정치권에 '눈먼 돈'이 넘쳐났다"며 "선거 때는 일일이 돈 셀 시간이 없어 돈뭉치 두께로 대충 맞춰서 유권자에게 뿌릴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30억원을 쓰면 당선되고 20억원을 쓰면 낙선한다는 '30당20락'이란 얘기는 그래서 나왔다.
선거공영제가 실시되면서 선거에 들어가는 돈은 훨씬 줄었지만 그렇다고 돈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일상적인 정치활동에는 여전히 많은 돈이 든다. 지역구 사무실 유지와 인건비 등 일상적인 경상비만도 평균 500만원 이상이 필요하다. 지역구에 돌리는 의정보고서 2~3만부를 찍는 데 대략 1000만원이 든다. 이 밖에 정책자료집 제작과 각종 토론회 개최 등 의정활동도 비용을 수반한다.
전남의 세 개 군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민주당 A의원은 최근 보좌진들의 출장비를 사비로 충당케 하고 있다. 그는 "세 개 군마다 사무소를 하나씩 두고 있어 임대료와 인건비,사무용 복사기 등 비품 관리비만 해도 엄청나다"며 "한 달에 120만원 주는 여직원도 고용하기 어려워 사무소를 비워놓기 일쑤"라고 말했다. 서울보다 넓은 면적에 섬도 많아 지역구를 한 번 도는 데 기름값부터 부담이라는 것이다. 그는 "초선인 만큼 첫해에 민심을 잘 잡아야 하는데 한 해 1억원 남짓의 예산으로는 빠듯하다"고 하소연했다.
경북지역 B의원(한나라당)은 지역에 공단이 많아 살림살이가 나은 편이다. 하지만 3선 의원으로서 정치 활동의 스케일이 커진 데다 당직도 맡아 지출이 커졌다. 그는 "모임과 일정이 많아지면서 식사로 나가는 비용만 예전의 1.5배로 늘었다"며 "소위 품위유지 비가 오르면서 지역구 관리에 돈을 조금씩 줄이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돈 먹는 하마'인 지역 여론조사 횟수를 줄이는 한편 의정보고서도 예년보다 적게 배포했다고 전했다.
중진인 D의원은 "세개 지역의 사무실을 운영하려면 임대료와 인건비,경상비 등으로만 한 달에 1000만원 이상 소요된다"며 "밥값,홍보비 등을 포함하면 2000여만원이 필요한데 이를 1000여만원의 세비와 약간의 후원금으로 충당하기는 어렵다"고 토로했다.
◆후원실태
의원들의 고민은 돈은 필요한데 돈을 조달하기가 예전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16대 국회 말에 개정된 정치관계법(오세훈법)에 따라 연간 3억원이었던 정치자금의 모금한도는 1억5000만원(선거 있는 해는 3억원)으로,개인 기부한도는 1억2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대폭 줄었다. 정치인의 주수입원이었던 기업으로부터 돈도 받을 수 없다. 변칙적인 출판기념회의 목적도 다름아닌 후원금 모금이다.
300만원 이상의 고액후원자 명단이 매년 공개되는 것도 부담이다. D의원은 "지역 중소기업인들이 가끔 돈을 보내는데 우리가 돌려보내는 경우도 있다"며 "합법적인 돈이라도 고액이면 공개 후 문제가 불거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렇게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다보니 부정한 돈에 대한 유혹도 커진다. 정치인은 돈이 필요하고 돈을 가진자는 자신의 사업 등을 감싸줄 권력을 찾는다. 은밀한 돈(불법 자금)은 이런 틈새를 통해 정치권에 유입된다.
불법자금(뇌물)과 합법자금(후원금)의 경계가 모호한 것도 불법정치자금을 양산하는 한 요인이다. 뇌물과 후원금의 차이는 대가성 여부이나 입증이 쉽지 않다. 부정한 돈을 받고도 후원금 영수증을 끊어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애매한 정치자금을 받았다 17대 때 금배지가 날아간 사람도 적지 않다. 문제는 의원들이 여전히 "재수가 없어서 걸렸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한 불법정치자금 비리는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해법은 없나
대다수 의원들은 투명성 제고를 전제로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투명한 모금과 지출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되 후원금 한도를 높이고 모금방식도 다양화해 돈 가뭄에서 해방시켜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의원은 "지금과 같은 규제위주의 정치자금법은 의원들에게 범법자가 되라고 하는 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경석 한나라당 의원은 법인과 단체의 기탁금을 허용해 정치자금난을 해소하는 내용의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지난 2월에 제출했다.
김세연 한나라당 의원은 "열심히 활동할수록 쪼들리는 현재의 정치자금제도는 문제가 있다"며 "깨끗한 돈이 정치권에 더 활발하게 돌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정치인과 돈의 관계를 말해주는 미국 정가의 우화다. 정치와 돈을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는 의미다.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박연차 리스트'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간 상대적으로 깨끗할 것으로 여겨졌던 정치인들이 리스트에 오른 것으로 알려지면서 새삼 정치인과 불법 정치자금의 함수관계에 관심이 집중된다.
◆불법 정치자금 왜 되풀이되나
박연차 리스트에 거론된 정치인은 정당과 지역,정치경력을 초월한다. 정치인 누구도 돈의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는 방증이다. 불법 정치자금의 역사는 깊다. 13대부터 정치를 해온 한 전직 의원은 "10여년 전만 해도 정치권에 '눈먼 돈'이 넘쳐났다"며 "선거 때는 일일이 돈 셀 시간이 없어 돈뭉치 두께로 대충 맞춰서 유권자에게 뿌릴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30억원을 쓰면 당선되고 20억원을 쓰면 낙선한다는 '30당20락'이란 얘기는 그래서 나왔다.
선거공영제가 실시되면서 선거에 들어가는 돈은 훨씬 줄었지만 그렇다고 돈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일상적인 정치활동에는 여전히 많은 돈이 든다. 지역구 사무실 유지와 인건비 등 일상적인 경상비만도 평균 500만원 이상이 필요하다. 지역구에 돌리는 의정보고서 2~3만부를 찍는 데 대략 1000만원이 든다. 이 밖에 정책자료집 제작과 각종 토론회 개최 등 의정활동도 비용을 수반한다.
전남의 세 개 군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민주당 A의원은 최근 보좌진들의 출장비를 사비로 충당케 하고 있다. 그는 "세 개 군마다 사무소를 하나씩 두고 있어 임대료와 인건비,사무용 복사기 등 비품 관리비만 해도 엄청나다"며 "한 달에 120만원 주는 여직원도 고용하기 어려워 사무소를 비워놓기 일쑤"라고 말했다. 서울보다 넓은 면적에 섬도 많아 지역구를 한 번 도는 데 기름값부터 부담이라는 것이다. 그는 "초선인 만큼 첫해에 민심을 잘 잡아야 하는데 한 해 1억원 남짓의 예산으로는 빠듯하다"고 하소연했다.
경북지역 B의원(한나라당)은 지역에 공단이 많아 살림살이가 나은 편이다. 하지만 3선 의원으로서 정치 활동의 스케일이 커진 데다 당직도 맡아 지출이 커졌다. 그는 "모임과 일정이 많아지면서 식사로 나가는 비용만 예전의 1.5배로 늘었다"며 "소위 품위유지 비가 오르면서 지역구 관리에 돈을 조금씩 줄이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돈 먹는 하마'인 지역 여론조사 횟수를 줄이는 한편 의정보고서도 예년보다 적게 배포했다고 전했다.
중진인 D의원은 "세개 지역의 사무실을 운영하려면 임대료와 인건비,경상비 등으로만 한 달에 1000만원 이상 소요된다"며 "밥값,홍보비 등을 포함하면 2000여만원이 필요한데 이를 1000여만원의 세비와 약간의 후원금으로 충당하기는 어렵다"고 토로했다.
◆후원실태
의원들의 고민은 돈은 필요한데 돈을 조달하기가 예전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16대 국회 말에 개정된 정치관계법(오세훈법)에 따라 연간 3억원이었던 정치자금의 모금한도는 1억5000만원(선거 있는 해는 3억원)으로,개인 기부한도는 1억2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대폭 줄었다. 정치인의 주수입원이었던 기업으로부터 돈도 받을 수 없다. 변칙적인 출판기념회의 목적도 다름아닌 후원금 모금이다.
300만원 이상의 고액후원자 명단이 매년 공개되는 것도 부담이다. D의원은 "지역 중소기업인들이 가끔 돈을 보내는데 우리가 돌려보내는 경우도 있다"며 "합법적인 돈이라도 고액이면 공개 후 문제가 불거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렇게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다보니 부정한 돈에 대한 유혹도 커진다. 정치인은 돈이 필요하고 돈을 가진자는 자신의 사업 등을 감싸줄 권력을 찾는다. 은밀한 돈(불법 자금)은 이런 틈새를 통해 정치권에 유입된다.
불법자금(뇌물)과 합법자금(후원금)의 경계가 모호한 것도 불법정치자금을 양산하는 한 요인이다. 뇌물과 후원금의 차이는 대가성 여부이나 입증이 쉽지 않다. 부정한 돈을 받고도 후원금 영수증을 끊어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애매한 정치자금을 받았다 17대 때 금배지가 날아간 사람도 적지 않다. 문제는 의원들이 여전히 "재수가 없어서 걸렸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한 불법정치자금 비리는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해법은 없나
대다수 의원들은 투명성 제고를 전제로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투명한 모금과 지출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되 후원금 한도를 높이고 모금방식도 다양화해 돈 가뭄에서 해방시켜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의원은 "지금과 같은 규제위주의 정치자금법은 의원들에게 범법자가 되라고 하는 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경석 한나라당 의원은 법인과 단체의 기탁금을 허용해 정치자금난을 해소하는 내용의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지난 2월에 제출했다.
김세연 한나라당 의원은 "열심히 활동할수록 쪼들리는 현재의 정치자금제도는 문제가 있다"며 "깨끗한 돈이 정치권에 더 활발하게 돌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