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외환위기 때 해체된 대우그룹의 창립 42주년(3월22일)을 맞아 내일 옛 임직원들이 모여 조촐한 기념식을 갖는다고 한다. 연례행사지만 올해는 좀 각별하다. 그룹이 쓰러진 후 처음으로 김우중 전 회장이 참석한다는 얘기가 들리는 까닭이다. 해체되기 전 계열사들이 '대우'의 이름으로 살아 있고,'세계경영'의 흔적 또한 아직 각지에 남아 있다. 그래서 당시 대우를 살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부질없는 일이다. 영속적인 기업은 없고,기업이 망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삼성그룹의 창립기념일이 같은 날인 것은 우연이다. 모태인 삼성상회가 1938년 설립된 지 올해로 71주년을 맞는다. 3월27일은 LG그룹의 첫 출발인 락희화학공업 창립 62주년이다. 잘해야 30년을 넘기기 어렵다는 기업수명을 훨씬 뛰어넘어 글로벌기업의 성취를 일궈낸 이들은 우리 기업사의 걸출한 표상이다.

'기업수명 30년'은 일본 닛케이비즈니스가 1980년대 말 과거 100년 동안의 자국 내 100대 기업 수명을 연구한 결과였지만 벌써 옛말이다. 미국은 맥킨지 조사에서 1950년대 45년이었던 기업 평균수명이 1990년대 22년,2000년대 15년으로 짧아졌다. 1896년 '다우존스 산업평균주가지수'가 처음 발표될 때 뉴욕증시 거래종목 12개 가운데 제너럴일렉트릭(GE) 하나만 남았을 뿐이다. 그 GE마저 비틀거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도 30년 전 100대 기업 중 아직 100대 기업군에 남아 있는 곳은 20개 미만에 불과하다. 1965년 국내 최대기업이었던 동명목재의 이름은 지금 기억하는 사람조차 별로 없다.

기업 흥망의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경영환경이 갈수록 급격하고 단절적으로 변하고 있고,당장 전 세계를 휩쓰는 경제위기의 폭풍이 수많은 기업을 집어삼키면서 수명을 더욱 단축시킬 게 뻔하다.

이 위기는 지금껏 세계 자본주의경제를 지배해온 핵심가치들까지 부정하는 양상으로 진전되고 있다. 특히 이런 혼돈은 기업경영의 패러다임까지 바꿀 가능성이 높다. 지난 수십년 'CEO(최고경영자)의 우상'이었던 잭 웰치 전 GE 회장의 자기부정이 대표적이다. 28년 전 '주주가치 극대화'선언을 통해 현대 경영의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냈던 그는 최근 "주주가치 추구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짓"이라고 뒤늦게 고백했다.

기업도 환경변화에 끊임없이 적응하고 능동적으로 진화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이 자연법칙이자 경영의 본질이다. 검증된 경영원칙을 다시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기업 고유의 핵심역량을 바탕으로 부(富)창출의 원천이 노동,기술,자본,정보로 바뀔 때 신속하게 대응한 '변화관리',기업의 성취를 자신의 목표와 일체화시키는 구성원들의 응집력,무분별하게 일을 벌이지 않고 돈을 모아두었다가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는 자본운용의 보수성 등이 오랜 기간 생명력을 지켜온 기업들의 공통점이다.

웰치는 "경영의 최우선 가치는 종업원과 고객,제품"이라고 다시 정의했다. 한마디로 '고객만족'의 초심을 되찾자는 얘기다. 살아남기도 벅찬 마당에 한가한 소리일 수 있지만,지금 위기의 기업들에 가장 절실한 경영의 기본인지 모른다. 모든 기업은 어떤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고,그 가치가 고객에게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본질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때인 것이다. 그 답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몇 년 전까지 세계 최고(最古)의 기업은 일본의 곤고구미(金剛組)였다. 서기 578년 백제인이 창업해 오사카의 시텐오지(四天王寺) 등을 세운 기업이다. 그 회사가 무려 1428년이나 이어온 역사를 뒤로 하고 2006년 파산했다. 어이없게도 1980년대 버블경제 시절 잠시 한눈을 팔아 자신의 핵심역량과 무관하게 사들였던 땅값이 폭락함으로써 빚을 견디지 못했던 탓이다. 기업은 그렇게 쉽게 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