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고 소외받고 탄압받는 자를 위해 일생을 바치신 큰 어른.그분이 우리 곁에 계셨듯,우리도 그분 가시는 길 곁에 있어야죠."

김수환 추기경의 빈소가 마련된 명동성당이 17일 '사랑과 화해'의 큰마당으로 변했다. 종파와 정파를 넘어선 것은 물론이고 지역이나 지위,빈부,남녀노소 구분없이 하루 종일 애도의 물결이 넘쳐났다.

[김수환 추기경 선종] 정파도 종교도 초월…명동성당은 지금 사랑ㆍ화해의 큰마당
갈등과 반목으로 얼룩진 우리 사회를 사랑과 화해로 감싸안으라는 '큰 어른'의 메시지를 보는 것 같다고 한 조문객은 감격해했다.

이날 영하의 날씨에도 오전 6시부터 추모 행렬이 줄을 이었다. 교복을 입은 어린 학생부터 거동이 불편한 노인까지 연령과 계층은 다양했지만 추기경을 기리는 마음은 한결 같았다.

13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명동성당 본관 대성전은 조문 시작 30분 만에 추모 인파로 가득 찼다. 오후가 되자 조문 행렬이 명동길을 넘어 퇴계로 방면까지 2㎞ 이상 이어졌다. 이날 조문객 수는 10 만여명으로 추산됐다.

☞ [화보] 김수환 추기경 선종…생전 모습
[화보] 故김수환 추기경 유리관 안치

[김수환 추기경 선종] 정파도 종교도 초월…명동성당은 지금 사랑ㆍ화해의 큰마당
○…김 추기경의 선종은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의 발걸음도 이끌었다. 이성택 원불교 교종원장은 교인 30명과 함께 빈소를 찾아 "김 추기경님은 한국사회의 격변기 때 시대정신을 대변했다"며 슬픔을 표했다.

부천 석왕사 주지이자 불교방송 재단이사장인 영담 스님도 명동성당을 찾아 "김 추기경님은 특정 종교가 아닌 국민의 성직자"라면서 "오래 계셔야 했는데 일찍 가셔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김삼환 총회장은 "그분이 평생 원하시던 대로 우리 사회에 참된 평화와 화해,정의가 구현되기를 소망합니다"라고 밝혔다.

최근덕 성균관장도 "추기경과 한 시대를 산 우리는 행복하다"고 소회를 나타냈다. 김동완 천도교 교령,한양원 한국민족종교협의회장도 조문했다.

[김수환 추기경 선종] 정파도 종교도 초월…명동성당은 지금 사랑ㆍ화해의 큰마당
○…정치권도 김 추기경의 선종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명동성당에 도착해 조문록에 '우리 모두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우리 모두의 가슴에 함께 할 것입니다'라고 쓴 뒤 정진석 추기경의 안내로 빈소를 찾았다.

이 대통령이 "지난해 성탄절 날 뵐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때는 말씀도 나누시고 하셨는데…"라며 아쉬워하자 정 추기경은 "그때가 사실상 마지막이셨다. 그 뒤로는 기력이 더 떨어져 옆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것도 힘들어 하셨다"고 답했다.

이 대통령은 "그날 교회에 갔다 갑자기 뵙고 싶어서 병문안을 가게 되었는데 힘드시니 그냥 계시라고 만류하는데도 자꾸 말씀을 하려 하셨다"면서 "어렵고 힘든 때에 국민들에게 사랑하고 나누라는 큰 가르침을 남기셨다"고 회고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빈소를 찾아 "독재 치하에서 고생하는 국민을 위해 광야의 소리 같은 말씀을 많이 하셨고 행동으로 옮기셨으며,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에게 마음을 쓰시고 그들의 편이 되셨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사정권 시절 23일간 단식할 때 찾아와서 간곡히 기도해줬다"며 "큰 어른이 가서 정말 안타깝다"고 밝혔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정치적으로 힘들 때 많은 도움을 주셨고 한없이 겸손한 자세를 가르쳐 주신 분으로,오랫동안 마음의 스승으로 모셨는데 빈 자리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김형오 국회의장과 정세균 민주당 대표,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도 조문 행렬에 동참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부친인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재임하던 시절 청와대에서 김 추기경을 처음 만났다면서 "돌아가시기 전 전화를 한 적이 있었는데 몸이 편찮으신데도 나라 걱정을 많이 하셨고,잘해 달라고 당부하셨다"고 말했다. 한승수 국무총리와 이용훈 대법원장,오세훈 서울시장,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도 빈소를 찾았다.

[김수환 추기경 선종] 정파도 종교도 초월…명동성당은 지금 사랑ㆍ화해의 큰마당
○…사장단 27명과 함께 빈소를 찾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은 "불교 신자이지만,내 종교가 중요한 만큼 남의 종교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조문을 왔다"면서 "경제도 어려운 상황에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이 떠나셔서 애통하다"고 전했다.

○…세레명이 세실리아인 가수 인순이는 "뵐 때마다 등을 두드려 주시며 '열심히 잘 살아왔다. 세실리아 예쁘다'고 말씀해 주셨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고운/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
사진 / 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