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켓포 무장한 쾌속선타고 급습올들어 선박 60여척 납치

장기 내전으로 무정부 상태 … 대부분 가난한 어부 출신


"바닷가재와 상어를 잡는 평범한 어부였던 나를 해적으로 내몬 것은 가난이었다.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없는 소말리아에서 모든 젊은이들의 미래는 절망뿐이다. "

소말리아 해역에서 대형 유조선 시리우스 스타호와 우크라이나의 무기 수송선 파이나호를 납치해 세계를 놀라게 했던 해적단의 우두머리인 샤문 인다부르는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12월18일자)와의 위성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소말리아에서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던 어업마저도 주요 선진국 및 아시아 국가에서 온 어선들의 불법 조업으로 기반이 무너지면서 해적질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전쟁과 빈곤만 남은 절망의 땅 소말리아.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동쪽 끝에 코뿔소 뿔처럼 튀어나온 소말리아에선 중앙정부가 사라진 지 오래다. 무정부 상태의 소말리아에서 해적질은 유일한 성장 산업(?)이다. 정치적 공황 상태에서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소말리아인들은 해적의 길을 택했다. 소말리아 해적들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까지 달린 쾌속선을 타고 경기관총과 로켓포 등 중화기로 위협한다. 목표 선박을 공격해 선원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배를 탈취한다.

소말리아 해적들은 더 많은 보상금만 받을 수 있다면 무기 수송선이든 대형 유조선이든 공격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해적들은 올 들어 소말리아 인근 해상에서 120여차례 선박들을 공격했고,60여척의 배를 납치했다. 아직도 선박 19척과 선원 400여명이 소말리아 해안의 해적 근거지에 억류돼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엔에 따르면 올해 납치된 선박들을 풀어주는 대가로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지불된 보상금이 1억2000만달러에 달한다. 해적들은 이 돈으로 새로운 무기를 구매할 뿐 아니라 고급 빌라에서 외제차를 몰면서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다. 소말리아에서 해적이 번성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극도의 정치적 혼란이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22년간 소말리아를 통치하던 독재자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가 1991년 말 군벌 연합세력에 의해 축출된 후 종족과 지역으로 갈라진 군벌들 간 장기 내전이 시작됐다.



내전 초기에 미국이 개입했지만 1993년 작전 중 블랙호크 헬기 2대가 피격당하고 18명의 미군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발을 뺐다. 1995년에는 유엔마저도 소말리아에 주둔시켰던 평화유지군을 철수했다. 사실상의 무정부상태에서 해적 수는 급증했다. 17년 넘게 계속된 내전은 소말리아 경제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내전으로 100만명가량이 목숨을 잃었고,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600달러에도 못 미치는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유엔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적 지원 없이는 생존조차 불가능한 소말리아인 수가320만명에 달한다. 이는 소말리아 전체 인구 950여만명의 3분의 1이다.

국제 사회가 소말리아 해적 문제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이들의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현재 미국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인도 등 10여개국으로 이뤄진 다국적 해군이 군함을 파견해 해상 경계활동을 펼치고 있다. 중국도 자국 선박 보호를 위해 구축함을 파견할 계획이다.

하지만 복잡한 국제법 때문에 해적을 잡은 뒤에도 처벌이 힘들어 다시 풀어줘야 하는 상황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난 16일 소말리아 해적 소탕을 위해 본거지가 있는 육상 공격도 허용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해적들은 그날 하루에만 말레이시아 예인선,터키 화물선,요트 등 3척을 납치했다.

전문가들은 소말리아 해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소말리아에 강력한 중앙정부가 수립돼야 한다고 말한다. 내전이 종식되고 피폐해진 소말리아인들의 삶에 희망이 보여야 궁극적으로 해적질도 줄어들 것이란 얘기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