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장들 '여론에 떠밀린' 자율 결의

시중 은행장들이 22일 긴급 모임을 갖고 강도 높은 자구노력 이행을 다짐하는 결의문을 채택키로 한 것은 은행권에 대한 정부 지원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이 그만큼 싸늘하다는 것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1997년 외환위기 과정에서 대규모 공적자금이 투입돼 정상화된 은행들이 덩치에 걸맞은 사회적 기여를 해오기는커녕 그 과실을 향유하다가 불과 10여년 만에 또 다시 정부에 손을 벌리는 상황을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ADVERTISEMENT

특히 안정적인 경제시스템 운영을 위한 최후 보루가 돼야 할 은행들이 키코(KIKO) 계약 등을 통해 중소기업의 경영난을 가중시키고 무분별한 외화 차입으로 환율 불안을 초래하고 있다는 정치권의 지적도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은행,도덕적 해이에 빠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21일 "국민 세금으로 혜택받는 은행들이 고임금 구조를 유지하는 건 옳지 않다"고 언급한 대목이 은행에 대한 시중의 여론을 단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국민 신한 하나 등 시중은행의 경우 직원 1명당 평균 급여액(남자 정규직 기준)은 7500만~8000만원으로 일반 제조업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형 제조업체의 경우 전후방 산업을 통한 고용효과가 크고 수출을 통한 외화 획득이라는 사회적 기여를 해오고 있지만 은행의 경우 그동안 부동산 담보대출과 펀드수수료 판매수입 등 손쉬운 방법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겨오면서 그 과실만을 챙겨왔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올해도 금융노조는 정규직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하겠다고 하면서도 5.8%의 일률적인 임금인상과 정년 2년 연장을 요구,아직까지 협상이 타결되지 않고 있다.

ADVERTISEMENT

비록 해외 요인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은행들이 유동성 위기를 이유로 정부에 또 다시 손을 벌리는 사태가 벌어지자 마지못해 지원을 결정하면서도 청와대는 물론 정치권도 마땅찮은 기색을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결국 대통령까지 은행의 무사안일과 도덕적 해이를 꼬집고 나선 것이다.

◆고강도 자구조치 불가피

은행장들은 22일 자율결의 형태를 통해 임금동결 등 강도 높은 자구계획의 이행과 함께 중소기업 지원에 적극적인 실행의지를 다짐할 계획이다. 은행권 고위 관계자는 "현 경제 상황에 대한 은행의 책임을 겸허히 인정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자발적인 실천 계획을 담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우리,하나은행이 전 임원의 급여를 10% 삭감하기로 했다. 기업은행도 임원 연봉을 15% 줄이기로 했다. 노조의 반발이 변수이긴 하지만 일반 직원들의 경우 임금동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유지창 은행연합회장도 최근 은행권 임금협상에서 '절박하게 임금 동결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호소문을 배포하기도 했다.

ADVERTISEMENT

불요불급 자산의 매각 등 비용절감과 함께 조직슬림화 등 구조조정도 이어질 전망이다. 기업은행은 10월부터 비상경영체제를 구축,각종 경비 10% 이상 절감을 목표로 긴축 운용 중이며 불요불급한 회원권 등을 매각함으로써 경영합리화를 도모할 계획이다.

우리은행도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인 만큼 사회적 책임을 느끼고 비용 절감 등 자구노력을 전개하기로 했다. 신한은행은 부서 간 통폐합 등을 통해 조직을 슬림화하고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점포 전략도 재검토하기로 했다.

이심기/정인설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