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이냐 충성도냐.상당수 기업이 뽑을 땐 학벌,키울 땐 충성도를 중시하는 모양이다. 안 그러고서야 지방대 출신은 서류심사도 통과 못한다거나 대학명만 빼면 합격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생겨나지 않을 테고,신입사원 27.9%(중소기업 36.6%,대기업 21%)가 입사 1년 만에 그만두는 일이 벌어질 리도 없다.

애써 들어간 직장을 떠나는 이들의 변은 비슷하다. '잘하면 내 덕,못하면 네 탓'인 상사에 좌절하고,기업문화를 가르친다는 이유로 잡무나 떠맡기고 괜한 스트레스를 주는 데 질린다는 것이다. 봉급도 봉급이지만 말로만 혁신 운운하고 낡은 관습을 고수하는 상사의 태도,불확실한 비전도 견디기 힘들다는 고백이다.

윗사람도 할 말은 많다. 조직문화나 상사 입장을 무시한 채 대들거나 고루하고 무력하다는 식으로 몰아붙이고 멋대로 구는 통에 조직을 운영하기 힘들다는 게 그것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보이지만 분명한 건 참고 순응하는 사람이 줄었다는 점이다. 그만큼 리더십이 중요해졌다는 말도 된다.

리더십에 관한 한 정답은 없다. 변혁기냐 안정기냐 에 따라 달라야 한다고도 한다. 카리스마 리더십과 서번트 리더십의 효용에 관한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씨(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가 최근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요리와 지휘론에 주목하는 건 그런 까닭이다.

음식 잘하기로 소문난 그는 음악에 빠지기 전 요리사가 되고 싶었다며 여러 가지 양념을 어떻게 섞느냐에 따라 음식 맛이 달라지듯 지휘도 화음이 중요하고 그 점에서 두 가지는 통한다고 털어놨다. 그의 말처럼 요리는 조화의 예술이다. 맛있는 음식은 좋은 재료에 뛰어난 솜씨와 각별한 정성이 더해져야 나온다.

김치만 해도 싱싱한 배추와 천일염이 필수다. 무 마늘 고춧가루 젓갈을 잘 고르고 배추를 알맞게 절이고 속의 간을 짜거나 싱겁지 않게 맞추는 건 솜씨요,고루 버무리고 꼭꼭 눌러담고 중간중간 맛을 보는 건 정성이다. 한 가지만 부족해도 맛은 급감한다. 된장찌개도 구수하면서 칼칼한 된장이 첫째지만 파 마늘 멸치를 언제 얼마나 넣느냐에 따라서도 맛이 완전히 달라진다.

정 감독의 논리에 따르면 지휘도 마찬가지다. 요리를 잘하려면 재료의 품질과 용도를 구분한 다음 제대로 다루고 각각의 맛이 어우러지게 해야 하듯 지휘도 실력과 개성이 다른 연주자들의 특성을 파악하고 이들이 각기 최고의 연주를 하면서도 서로 조화를 이뤄 통일된 소리를 내도록 훈련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경영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학벌이냐 충성도냐를 따질 게 아니라 학벌과 상관 없는 능력의 소유자를 찾아내고,적재적소에 배치해 적성을 발휘하게끔 수시로 격려하고,실력 있지만 튀는 사원의 충성도를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기존 체제에 대한 회의와 반발,존재에 대한 갈등은 젊은층의 특권이다. 입사 1년 만에 30%가 나가는 걸 막는 일은 어렵지 않다.

사람은 산이 아니라 작은 돌멩이나 턱에 걸려 넘어진다. 퇴사를 결심하게 하는 건 연봉 이외에 인간적으로 배려받지 못한다는 자괴감과 편견 없는 기회 제공 및 공정한 평가에 대한 의구심 내지 불신이다. "우리도 처음엔 다 그랬다"는 말로 얼버무리거나 무시할 게 아니라 불필요한 야근과 회식은 줄이는 게 맞다.

일단 조직문화부터 배우라고 윽박지르지 말고 능력과 자세에 따라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비전을 제시하고 거기에 이르는 몇 가지 다른 내비게이션을 일러주는 것이 필요하다.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사고가 요구되는 부문까지 일괄적으로 지옥훈련을 강요하는 교육,매뉴얼 없이 어깨 너머로 눈치껏 배우라는 식은 이제 그만둘 때도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