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사감위,캐나다 지명을 영국으로 착각.'

11일 한국마사회가 배포한 보도자료의 제목이다. 사감위는 국무총리실 산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를 말한다. 공기업인 마사회는 왜 같은 정부 기관인 사감위를 '바보'라는 원색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비난한 걸까.

사정은 이렇다. 사감위는 지난달 19일 '사행산업 건전발전 종합계획'을 설명하는 공청회를 열었다. 이 계획은 경마,경륜,경정,복권,카지노 등 국내 사행산업의 연간 매출 총량을 14조원가량으로 제한하는 법률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사감위는 캐나다에서 개발된 'CPGI'란 조사도구를 이용해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의 도박 중독이 영국 등 선진국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마사회 등 업체들이 CPGI의 신뢰도가 떨어진다며 강력 반발하자 사감위는 공청회 말미에 종합계획을 재검토하겠다고 한 발짝 물러섰다.

잠잠해질 것 같던 사감위와 사행업체 간 갈등은 지난 4일 다시 불이 붙었다. 사감위가 내부 전문가 회의를 통해 CPGI의 신뢰성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당초 계획안을 밀어붙이기로 한 것.급기야 마사회 등은 사감위가 재검토하겠다는 약속을 어겼다며 지난 10일 대규모 항의집회를 열자 사감위는 뒤늦게 해명자료를 내놨다. 해명자료에는 사감위가 사용한 CPGI의 신뢰도가 조사도구로 활용되기 어려울 정도로 낮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종합계획안에 포함시켰던 해외 연구자료에서 캐나다 지명인 '브리티시 컬럼비아'를 영국으로 착각해 '영국의 중독률 조사'라고 잘못 발표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결국 해프닝과도 같은 해명으로 사감위는 스스로 졸속행정을 추진했음을 인정한 꼴이 됐다. 중독성이 강한 사행산업의 문제를 손질해야 한다는 정책의 당위성을 사행업체,나아가 국민들에게 설득시킬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밀어붙인 자업자득의 결과였다. 국민들에게 정책과 입장을 알리는 통로인 언론 보도자료에 '바보'란 표현까지 쓴 마사회 또한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에 급급하다는 비난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태명 경제부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