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극복하려면 부자들 지갑 열게 하라"

'부호들의 지갑을 열어라.'

세계 각국이 경제를 살리기 위해 부유세나 상속세를 잇따라 폐지하고 있다. 부자들이 과중한 세금 부담에서 벗어나 돈을 더 많이 써야 경기가 좋아진다는 판단에서다.

20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스페인 정부는 지난 50여년간 유지해 온 부유세를 최근 폐지키로 결정했다. 스페인에서는 100만명가량의 부유층이 최고 2.5% 세율의 부유세를 부담해 왔다. 하지만 올 2분기 스페인 경제가 전분기 대비 0.1% 성장에 그치는 등 경기 둔화가 가시화되자 정부는 긴급 회의를 열어 24개 항목의 부양책을 마련하며 부유세를 폐지하기로 했다.

스페인 정부의 이번 결정은 지난 3월 재선에 성공한 좌파 사회당 소속의 호세 사파테로 총리가 선거 공약을 이행했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흔히 부유세 폐지는 우파 성향 후보들이 내거는 공약으로 인식돼 왔지만 사파테로 총리는 총선 당시 "재선에 성공하면 부유세를 폐지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스페인은 부유세 폐지와 함께 상속세도 없애기로 했다. 사파테로 총리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이 이미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스페인 경제도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며 "이번 경기 부양책은 스페인 경제에 100억유로(약 15조5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하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기대했다.

부유세나 상속세를 폐지하는 움직임은 최근 수년간 다른 여러 국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들 세금이 소득 재분배 효과보다는 자본을 해외로 유출시키는 부작용이 더 심각하다는 지적들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지난해 말 60여년 만에 부유세를 폐지했다. 스웨덴 집권 중도우파 연정은 당시 "기업의 자본 투자를 통한 성장과 고용 촉진을 유도하기 위해 부유세를 없애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스웨덴 정부는 세금을 피하기 위해 해외로 유출되는 자본이 연간 1조5000억크로나(약 20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했다.

오스트리아 덴마크 등은 이미 1990년대 부유세를 없앴고 2000년대 들어서는 네덜란드 이탈리아 핀란드 등이 잇따라 부유세 부과를 중단했다. 현재 유럽 주요국 가운데 부유세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프랑스 스위스 독일 정도에 불과하다.

상속세도 점점 없어지는 추세다. 2004년 이탈리아 포르투갈 슬로바키아 등이 상속세를 폐지했으며 2005년엔 스웨덴도 이 세금을 없앴다. 이미 1970년대에 상속세를 없앤 호주와 캐나다,1992년 폐지한 뉴질랜드 등을 포함하면 총 30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7개국이 상속세를 폐지한 셈이다. 이 밖에 홍콩은 2006년 상속세를 없앴으며 미국도 상속세 폐지를 추진 중이다.

기업가 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상속세를 감면해 주는 나라도 늘고 있다. 독일은 가업 승계형 중소기업에 상속세를 최고 85%까지 감면해 주고 있다. 일본은 가업을 승계하는 중소기업에 주식 상속세의 과세 표준액(세금 부과 대상이 되는 기준 금액)을 80%까지 깎아 주도록 세법을 개정할 계획이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