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하 < 계명대 교수·정치학 >

선거가 코앞인데 주요 정당들은 모두 공천 몸살을 심하게 앓고 있다.

여당 대표는 공천논란에 책임을 진다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고,민주당의 최고위원과 선진당의 대변인은 비례대표 선정에 불만을 품고 사퇴했다.

거기다가 한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특정인을 당명으로 한 '친박연대'가 출범을 했다.

공천탈락 후 무소속이나 다른 당 후보로 출마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현상이 아니지만 이번 18대 총선은 유독 공천 후폭풍이 거센 것 같다.

인수위의 과욕과 내각 인선 문제에 공천문제가 겹쳐 신정부 출범한 지 한 달 만에 대통령은 신뢰,인재관리,지도력에 큰 타격을 입었고 민심이반 현상을 겪고 있다.

지난 대선과 달리 수도권과 영남권에서의 압승도 장담할 수 없는 처지가 됐고,국정 개혁과 실용주의 노선 정책의 추진 자체가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현행 공천제도와 개혁의 미망 때문이다.

17대 총선에서는 99개 지역에서 경선이 치러져 상향식 공천이 이뤄졌지만,이번 18대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려서 여ㆍ야 모두 중앙당에서 하향식 공천을 했다.

미국의 경우 재선을 위해 현역의원들은 지역구 관리에 최선을 다하는데,우리나라의 경우는 정당 지도부에 줄을 서야 공천을 얻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지난 대선에서 국회의원들은 개개인이 헌법기관이라는 자긍심도 버리고 특정 후보 뒤에 줄을 서서 이전투구를 벌였던 것이다.

지역의 당원이나 유권자가 후보자를 결정하지 않는 구도 속에서는 누구를 공천해도 언제나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개혁 공천의 취지와 실태도 문제다.

개혁 공천의 취지가 무능하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호가호위하는 현역의 물갈이라면 제대로 옥석을 가리고,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

단순한 인물교체가 개혁은 아니다.

민주화 이래로 총선 때마다 전체 의원의 40% 이상의 초선의원이 등장했고,지난 17대 총선만 해도 62.5%가 초선의원이었다.

이 말은 4년마다 새 얼굴이 개혁의 이름으로 등장하지만,4년 후에는 개혁의 대상으로 퇴출당한다는 말이다.

등장과 퇴출의 이유가 능력과 도덕성이라면 국민들은 공천을 통한 국회개혁에 박수를 보낼 것이지만,등장할 때도 당과 후보자 이름,그리고 간단한 약력밖에 몰랐고,퇴출될 때도 공천 받지 못했다는 사실 외에 국민이 아는 게 없는 현실에서 개혁공천의 명분은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개혁공천의 잣대는 현역 탈락률이 아니고,제대로 된 인사의 공천이다.

개혁 공천의 실태는 또 어떠한가.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개혁공천을 내걸었지만,국민은 이를 '명계남(이명박 계열만 남음),태현실(태반이 현재 실세)' 공천이라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특정 계파가 줄줄이 잘려나가는 개혁 공천,지난 노무현 정부의 실정에 책임 있는 실세들은 다 살아남는 개혁 공천을 누가 개혁공천이라고 납득할 수 있겠는가.

이번 공천 갈등의 최대 피해자는 국민이다.

총선 직전 공천이 결정된 의원후보자의 정치적 소신이나 정책 공약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국민은 또 당 깃발만 보고 투표해야 하는 것인지 당황스럽다.

또한 후보자들 역시 지역 공약에 대한 준비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매니페스토 운동은 불가능하다.

몇몇 후보들은 자신의 정책비전으로 유권자에게 다가서기보다는 특정 정치지도자와의 특수 관계를 가지고,국민의 이성이 아닌 감성에 호소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총선은 제대로 된 인물 고르기가 애초에 불가능한 선거가 될 수도 있다.

총선 결과는 공천이 제대로 된 것이었는지 말해 줄 것이고,자칫 국민은 지루한 당권경쟁의 2막을 보게 될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