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 시인.문화평론가 >


입춘도 우수도 지나고 남녘 섬에는 동백꽃이 피었다지만 아직 바람 끝은 차고,모란 움들이 트려면 더 기다려야 한다.

정월 보름날 아침엔 노모가 지은 오곡밥과 나물을 먹고,낮엔 산림욕장까지 산책하고 돌아왔다.

이마에 닿는 바람은 차다.

하지만 벌써 봄은 성큼성큼 오고 있다.

마른 풀들 사이로 파릇하게 풀들이 돋았는데,눈과 얼음을 견디고 살아남은 그 풀들이 기특하고 대견해서 한참을 들여다본다.

나무들도 땅속 깊이 박은 뿌리로 물과 자양분을 빨아들이고 잎눈을 틔우려고 수런거린다.

밤에는 묵정밭에 고라니들이 산에서 내려와 마른 풀숲을 헤집고 돌아다니고,낮엔 장끼들이 부쩍 자주 요란한 울음소리를 내며 공중을 난다.

봄이 가까울수록 산 것들의 몸놀림이 바지런해지는 것이다.

매운바람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 매화다.

매화는 봄을 알리는 전령이요 봄의 맨 앞줄에 서는 기수다.

강희맹은 매화를 두고 '너의 그 맑은 향기로 해서/천지의 봄임을 깨달았나니'라고 노래했다.

이른 저녁을 먹은 뒤 서재에 들어와 어제 읽던 책을 다시 읽는다.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란 책이다.유대계 이탈리아 사람인 프리모 레비는 파시즘에 저항하는 지하운동을 하다 붙잡혀 아우슈비츠와 제3수용소를 거치며 살아남았다.이 책은 그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씌어졌다.

한 열차로 이송된 포로들은 분리작업을 거치는데,쓸모있는 일꾼으로 분류된 100명 남짓은 살아남지만,다른 쪽으로 분류된 500여명은 이틀 후까지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다.나치의 수용소는 절멸의 수용소요,살아있는 사람이 갈 수 있는 연옥(煉獄)이다.

수백만 유대인을 그 연옥에 가두고 죽인 히틀러와 그의 수하들은 말들을 바꿈으로써 저들이 하는 짓의 비열함을 가린다.

학살은 최종해결책으로,강제이송은 이동으로,가스실 살해는 특별처리로.

말 바꾸기는 그 행위의 더러움과 죄악을 가리려는 상징조작이다.

가족,집,자신의 오래된 습관,옷,신발,이름,심지어는 머리카락까지 다 빼앗긴 채 누더기를 걸치고 유령처럼 서 있는 사람들.가혹한 노동과 굶주림,질병,피로,그리고 학대와 수모에 지친 그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이 죽음의 수용소에서 온 힘을 다해 얼굴과 목과 어깨를 씻고,더러운 옷을 빨아 널고,신발을 닦아 신는 한 남자가 있다.

내일 살아남을 기약이 없기에 '내일 아침'이란 말이 금기어가 된 이 연옥에서 청결의 욕구는 뜻없는 사치가 아닐까.그는 "수용소는 우리를 동물로 격하시키는 거대한 장치이기 때문에,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동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몸씻기는 사치가 아니다.

사람다움을 말살하려는 자들의 음모에 저항하는 행위다.

걸을 때 척추를 세워 똑바로 걷는 것은 자신에 대한 존중과 최소한의 문명의 골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과연 씻기를 포기하는 자들은 죽고 끝까지 자신의 청결을 유지하려던 자들은 살아남는다.

사회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생명체란 유전자의 최대 증식을 위해 고안된 유전자의 운반 도구일 따름이라고 한다.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며,사람의 유전자가 모든 것이라는 말이다.

나는 도킨스의 견해를 지지하지 않는다.

사람은 숭고하다.

사람만이 시와 노래와 동화를 짓고,선악을 분별하며,사물의 성질에 대해 궁구하고,운명의 호의에 대해 감사한다.

사람만이 무용,책,건축물을 창조하고 유머,웃음,사랑의 즐거움을 누린다.사람만이 최악의 상황에서조차 자기존중과 타자에 대한 배려,산 것과 무생물까지 사랑하는 능력으로 그 숭고함을 증명해낸다.

프리모 레비는 무한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마주친 사람이 어떻게 견디며 살아났는지를,그리고 사람다움,그 존엄성과 숭고함을 어떻게 지켜냈는지를 담담하게 증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