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나 다를까.경매 낙찰률은 90%를 넘고 몇몇 작가는 전시 중 값을 올린다는 얘기까지 들렸다.과열 우려가 나왔지만 상대적 저가와 아시아 미술시장 확대 등에 따라 상승세가 이어진다고들 했다.그러나 신정아 사태에 이어 '빨래터'(박수근) 위작 시비와 '행복한 눈물'(로이 리히텐슈타인) 사건까지 터지면서 전망은 어둡다.
호황이라지만 일부 인기 작가와 젊은 작가에 한정돼 여전히 온기를 느끼지 못하던 윗목 작가들에겐 다시 한파가 몰아친 셈이다.미술품의 경우 증여세와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술품을 축재와 세금 탈루용으로 보는 시각도 커졌다.'행복한 눈물'을 둘러싼 삼성의 비자금 의혹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비자금으로 구입한 미술품이 있는지 여부는 조사 결과 밝혀질 일이다.하지만 삼성의 미술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우리 문화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부인하기 어렵다.일본 등에 흩어져 있던 옛미술품을 되찾는 데 앞장선 것도 삼성이요,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한국관을 개설,세계에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알린 것도 삼성이다.
기업에서 운영하는 미술관은 늘어났지만 국내외 작품을 꾸준히 수집하고 해외 유명작가전을 개최,일반에 세계의 미술 흐름을 소개하는 곳 또한 삼성이 거의 유일하다.앤디 워홀전 같은 대규모 전시는 물론 돈과는 거리가 먼 설치미술전은 홍라희 호암미술관 관장의 현대미술에 대한 유별난 애정이 아니면 불가능한 기획이다.
젊은 작가들에게 대규모 전시 기회를 제공,세계로 뻗어가도록 돕는 것도 삼성의 몫이다.세계는 지금 문화전쟁 중이다.유럽이 중세와 근대 미술에 승부를 건다면 미국은 팝아트를 비롯한 현대미술의 우위를 내세운다.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미술품 값이 천정부지로 오른 것도 중국의 문화적 지배욕과 무관하지 않다.
'디자인 한국'을 강조하지만 좋은 디자인이 저절로 나오는 건 아니고,순수예술 없는 문화강국 또한 불가능하다.'창고 속 미술품이 수천 점'이라지만 개중엔 삼성이 아니면 구입하지 않았을 작품도 허다할 것이다.비자금 의혹 수사가 필요하다 쳐도 삼성의 오랜 미술 발전 노력까지 폄하하는 건 안타깝다.
'빨래터' 위작 시비 또한 마찬가지다.의혹 제기에 따라 이뤄진 재감정에서 진품 판정이 났는데도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마침내 미국의 원 소장자가 나타나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기에 이르렀다.경매작품에 대한 위작 논란은 어떤 경우에도 미술계엔 악재일 수밖에 없다.
'행복한 눈물'과 '빨래터'는 국민 모두에게 이땅 최고작가의 그림과 팝아트에 대한 눈을 일깨웠다.미술품은 투자나 투기 대상이기 이전에 소장자의 긍지와 자부심이고 따라서 개인도 쉽게 내다팔지 않는다.하물며 세계적 미술관을 지향하는 삼성임에랴.우리 미술품의 값이 오르고 해외 유명작품이 이 땅에 있다면 그 또한 국부(國富)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