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시장이 서브프라임 모지기(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혼란에 빠져 있는 가운데 인터넷 가상공간에서도 실제 금융 시장 못지않은 금융위기가 벌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2일 세계적인 인터넷 가상현실 사이트인 세컨드라이프(www.secondlife.com)에서 가입자들이 일시에 예금 인출에 나서는 '뱅크런(Bank run)'이 발생하는 등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금융위기는 샌프란시스코의 한 업체가 세컨드라이프에서 운영하던 10여개 금융사의 문을 닫은 데서 촉발됐다.

이 은행은 1200만명의 세컨드라이프 고객들의 돈(린든 달러)을 예금으로 받아 운영됐다.

고객들의 예금으로 부동산과 도박산업에 투자해 큰 손실을 입은 뒤 지급 불능 사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세컨드라이프는 2주 전 이 은행의 폐쇄를 예고했고 이때부터 예금을 찾기 위해 고객들이 몰려드는 '뱅크런'이 발생하는 등 극도의 혼란을 빚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일부 고객은 예금을 무사히 찾았지만 예금을 찾지 못한 고객들은 손실이 불가피해졌다.

세컨드라이프는 실제 돈을 주고받지는 않지만 가상공간에서 집을 사거나 쇼핑을 하기 위해선 신용카드로 전용 통화인 '린든 달러'를 사야 한다.

린든 달러는 세컨드라이프의 공식 환전소나 각종 경매 사이트를 통해 현실에서 통용되는 달러와 교환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세컨드라이프에서 입은 금전상의 손실은 그대로 네티즌들의 실제 손실로 이어진다.

업멘빔이라는 아바타(가상공간의 분신) 이름을 쓰고 있는 한 고객은 이날 은행 앞에서 "린든 달러는 실제 달러로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실제 돈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돈을 돌려 달라"고 토플리스 차림으로 항의했다.

이번 금융위기는 세컨드라이프가 지난해 여름 도박을 금지시키면서 조짐을 보였다.

이 조치로 도박산업에 투자했던 진코 파이낸셜이란 가상 금융사가 파산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일부 은행 폐쇄로 촉발된 이번 위기는 세컨드라이프에서 운영되는 다른 금융기관들에도 파장을 미치며 예금 인출 도미노 사태로 번지고 있어 사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세컨드라이프에서 JT파이낸셜이란 금융사를 운영하는 관계자는 "최근 예금을 찾겠다는 고객들이 한꺼번에 밀려 ATM(자동입출금기) 운영을 일시 중단했다"고 전했다.

BCX란 가상 은행을 운영하는 스티브 스미스씨는 "이번 금융위기는 단기간에 끝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세컨드라이프 관계자는 "가상 세계에서 벌어지는 금융위기가 네티즌들에게 실제 피해를 초래함에 따라 사태의 향방을 주시하고 있다"며 "현실 세계와 비슷한 금융감독기관과 규제 방안을 도입하는 것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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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풀이]

세컨드라이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린든랩이 2003년 선보인 인터넷 기반의 가상현실 공간이다.

사용자의 분신인 아바타를 통해 가정을 꾸리고 각종 비즈니스를 하는 등 3차원의 또 다른 삶을 즐길 수 있다.

세계 주요 기업들도 이곳에 가상 지점을 내 광고 효과를 거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