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벡 < 美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 >

별 감흥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는 공약들(한국의 어떤 유권자가 대운하 건설이나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달성이라는 공약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을까?)과 해소되지 않은 여러 가지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한국 유권자는 압도적으로 이명박 당선자를 선택했다.

한국의 첫 최고경영자(CEO) 출신 대통령이 될 이 당선자는 미국의 첫 경영학석사(MBA) 출신 조지 W 부시 대통령보다 국정을 더 잘 이끌어 갈 것으로 기대된다.

부시 대통령이 눈높이를 한참 낮춰놓은 데다 이 당선자는 이미 서울시장 시절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이런 강점은 반대로 약점이 될 수도 있다.

끊임없이 주류 기득권층을 비판해 온 참여정부가 '아웃사이더'라면 이 당선자는 기득권층의 한 복판에 있는 '인사이더'에 해당한다.

이런 점은 그를 둘러싼 스캔들이 쉽사리 없어지기 힘들다는 것을 암시한다.

역대 선거와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미국과 북한 관련 이슈가 전면에 부각되지 않았다.

이 당선자가 두 나라와 얽혀 있는 문제를 얼마나 잘 해결하느냐는 워싱턴이 이 당선자의 행보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 당선자는 상대적으로 북한보다는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더 수월할 것이다.

한·미 관계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임기 말인 2001년 미국을 서둘러 방문하면서부터 악화되기 시작했다.

참여정부 들어서는 한·미 관계가 더욱 꼬여 버렸다.

노무현 대통령이 전시작전권 문제를 불쑥 제기하면서 두 나라 관계는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았다.

따라서 이 당선자가 어떻게 하든 한·미 관계가 더 나빠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당선자는 한·미 관계를 공고히 할 몇 가지 조치를 취해야 한다.

우선 가능한 한 빨리 부시 대통령과 개인적인 친밀감을 형성해야 한다.

이 당선자가 서울 시장이 되기 전 미국 조지 워싱턴대학에 몇 달간 머물긴 했지만 그는 여전히 워싱턴 정가에서는 낯선 인물이다.

부시 대통령은 개인적인 유대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당선자는 이러한 점을 잘 활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임 대통령들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는 우를 범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사진촬영을 하는 도중에 갑자기 평화협정 얘기를 꺼내 부시 대통령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이 당선자는 한·미 동맹을 재정립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까지 잘못 진행된 정책을 바로잡고 우호관계의 틀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전시작전권 이양 시기를 늦추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이미 정해진 스케줄 때문에 수정하기 힘들다면 한국 내 미군기지를 합치는 문제나 새로운 미국 대사관 위치를 정하는 사안이라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런 노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미국 국회를 통과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미국보다 더 큰 문제는 북한이다.

서울과 워싱턴 간 갈등은 대부분 평양에서 출발한다.

미국 정가에서는 이 당선자가 대북 강경책을 쓰지 않을까 우려한다.

그러나 필자가 아는 바로는 워싱턴의 걱정은 기우(杞憂)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북한 문제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

한반도의 평화 정착보다 중요한 이슈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당선자가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프로젝트에 갑작스런 제동을 걸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그러나 동시에 이 당선자는 대부분의 한국 국민들이 퍼주기식 대북 지원에 반대하고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지금이 그동안 머뭇거렸던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북한을 좀 더 개방적으로 이끌 적기인 셈이다.

물론 일반적인 한국인들이 미국과 북한에 대해 큰 관심을 갖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존경받는 정치인이 된다는 것은 경제적 성공을 이끌어내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최근 호주 총리에 오른 케빈 러드가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정리=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