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진(丁宇鎭) < 에너지경제硏 선임연구위원 >

최근 국제 유가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불확실한 증산 가능성으로 여전히 100달러대를 위협하고 있다.

그동안의 유가상승으로 우리나라의 에너지수입액도 눈덩이처럼 불어 금년에는 1000억달러에 근접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공행진을 하는 현재의 유가는 기본적으로 국제 석유시장의 수급불안 때문이다.

그러나 좀 지나치게 오른 감이 있다.

이란 핵문제 등 국제정세 불안과 달러약세,과잉유동성에 의한 원유 및 원자재시장의 투기자금 유입 등 심리적 투기적 요인들이 유가상승을 더욱 부추긴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요인들이 유가상승에 영향을 준 것도 결국은 시장이 미래의 석유공급을 불안하게 보기 때문이다.

중국과 인도 등 대국(大國)의 경제는 다소 기복은 있겠지만 이미 성장과 도약의 길로 들어서,세계 에너지수요를 크게 증가시킬 것이다.

반면에 석유 공급지는 점차 심해나 오지로 이동되며,생산여건이 악화돼 현재와 같은 타이트한 수급여건이 해소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따라서 심리적 투기적 요인이나,세계 경제상황에 따라 유가는 더 오르기도 내리기도 하겠지만 장기적인 고유가 기조는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지난 9월부터 유가가 가파르게 상승했는데도 정부는 과거와는 달리 특별한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한때 유가가 상승하면 10부제 강화,에너지 과소비업소 영업제한 등 규제조치와 수입관세 인하 같은 대증적(對症的) 요법으로 대응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단기 대책으로는 성과를 얻기 어렵다는 것이 과거의 교훈이다.

고유가에 대응하려면 에너지효율이 개선되고,신재생에너지가 확대되고,해외에서 자원개발이 활발히 추진돼야 한다.

이런 방안들은 장기간의 기술 발전과 투자를 요구한다.

그동안 거듭된 유가상승으로 정부는 이미 장기 대책들에 시동을 걸었다.

문제는 장기 대책들이,장기간 지속될 수 있는 가에 있다.

더구나 이런 장기대책들은 초기에 막대한 투자를 요하고,그 성과는 한참 후에 나타나는 특성 때문에 정책입안자들에게는 인기 있는 정책이 아니다.

그나마 유가가 불안하게 변동할 때는 국민적 공감을 얻어 추진력을 얻지만,유가불안이 다소 사라지면 국민들의 관심조차 얻기 어려울 때가 많다.

이 같은 현상은 고유가 대응이 곧 위기관리 정책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위기감이 사라지면 추진력이 약해지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일 것이다.

그러나 고유가 장기 대책들은 우리나라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가져다 주는 신산업 육성 정책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에너지효율개선과 신재생에너지의 확대는 첨단기술 경쟁을 통해 그 성과를 얻는다.

미래의 에너지는 자원경쟁이 아니라 기술경쟁을 통해 확보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도 에너지효율이나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다른 나라보다 기술만 우위에 서면 자원대국이 될 수 있고,고부가가치 수출산업 강국도 될 수 있다.

해외자원개발도 단순히 자원보유국에서 자원을 생산해 갖고 온다는 범주에서 벗어나 해당 국가의 대규모 프로젝트 시장에 진출하는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

최근 카스피해 근방의 중앙 아시아나 아프리카,중남미 지역들은 넘치는 오일머니로 발전소나 정유소,철도 등 빈약한 인프라 개선을 위한 대규모 건설이 한창이다.

특히 이런 나라들은 우리나라의 발전된 플랜트나 IT기술,나아가 지난 30년간 이룩한 우리의 압축 경제성장에 관심이 높다.

자원개발과 우리의 강점 산업들을 잘 연계한다면 자원도 얻고 다른 나라보다 먼저 신흥 산업국가들의 시장도 선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원의 저주'라는 말이 있다.

자원이 풍부해 오히려 가난하게 사는 나라들을 말하는 것이다.

자원빈국인 우리는,과감한 투자와 꾸준한 기술개발을 통해 고유가 대응을 미래의 성장동력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원의 부족을 '축복'으로 만드는 도전적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