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하르트 슈미트 < 조선호텔 총지배인 gerhard.schmidt@chosunhotel.co.kr >

겨울이 시작되면서 군밤 장수들이 거리로 나왔다.

내 고향 빈에도 겨울이면 '마로니'라고 부르는 군밤을 거리에서 판다. 지구 반대쪽인 서울과 빈. 군밤 하나로 나는 고향을 느낀다.

한국 사람들에게 내 고향 '빈'에 대한 이미지를 물어보면 모차르트,음악의 도시,'비엔나 소시지','비엔나 커피'를 말한다. 가본 적이 있느냐는 말에 유럽 여행 중 반나절이나 하루 정도만 있었다고 한다. 빈을 느끼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

커피만 해도 유럽 초기에 보급돼 오스트리아인에게 카페는 제2의 집이라고 할 정도로 카페문화가 발달했다. 센트럴 카페처럼 100여년이 넘은 유서 깊은 곳도 많다.

비엔나 커피 외에도 멜라주 등 다양한 커피가 있으며,그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케이크도 발달됐다. 이러한 카페 문화 덕분에 겨울의 거리 풍경에서는 커피 대신 와인에 계피 등을 넣고 따뜻하게 만든 글루바인을 들고 걸어 다니는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2000년의 역사를 가진 빈은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역사적인 도시다. 내가 살던 아파트도 450년이 되었는데,이것은 일반적일 정도로 모든 건물이 역사를 품고 있다. 이를 보존하기 위해 시내에는 자동차,화려한 간판 등이 규제된다. 그래서 유유히 걸으며 역사를 즐기기에 좋다.

오스트리아는 합스부르크 왕조가 오랜 시간 지배해서 귀족적이고 아름다운 예술과 왕가의 물건을 살 수도 있다. 왕실 기수 양성소를 시작,5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스페니시 라이딩 스쿨'은 빈을 방문하면 반드시 가볼 만한 곳이다. 백마를 타고 도열한 기수들의 마술을 볼 수 있다. 알트만퀘네라는 곳에서는 왕실에 납품하는 미니어처 초콜릿을 살 수 있다.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마을마다 크리스마스 시장이 선다.

각 가정에서 직접 구운 쿠키,빵,농산물 등을 파는데 오스트리아인들의 정감을 느낄 수 있다.

고향을 떠난 지 수십년이 지나 이제는 빈을 관광객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다. 젊은 시절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이제는 새롭게 보이고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빈을 잘 보전해준 시민들에게 감사하다. 서울에서 생활한 지 3년이 지났다.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찬 바람이 부는 거리를 걸으며 다시금 서울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다. 매일 보는 익숙한 곳도 외국에 왔다고 생각하고 다시 바라보면 어떨까. 아마 새로운 감동을 느끼고 모든 것이 소중하게 여겨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