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이라는 잔치가 끝나고 다시 어수선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찬양과 비판,일갈과 공박이 난무하면서 어수선함은 도를 더하는 것 같다.
정상회담의 특별 수행원으로 다녀온 인사들은 정상회담이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으며 한반도가 평화와 번영의 선순환 구조로 들어섰다고 찬양하고 있다.
반면 보수 진영에서는 찬양에 대해 의구심을 내비치면서 다음 정부에 더 많은 부담을 준 것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그런 공방(攻防) 속에서 어떤 젊은 학자는 보수적인 학자들에게 공부를 더하라며 준열히 꾸짖고 나서기도 했다.
너무 자주 보는 광경이라 새로울 것은 없는데 항상 마음이 답답해진다.
예컨대 3자 또는 4자가 모여 종전(終戰) 선언을 한다는 것은 분명히 애매한 문구이다.
평화 협정을 논의하는 협상 당사자나 주체와는 달리 종전 선언의 당사자에 대해서는 그간 북한의 입장이 나온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3자에 남한이 빠지는 것 아닌가라는 문제 제기가 나온 것이다.
또한 남한이 들어간다면 중국이 빠지는 것이 순리인 듯한데,과연 정전(停戰) 협정의 당사자인 중국의 반발을 고려한 것인지 모르겠다.
북한이 중국을 배제하고 싶었다 하더라도 남한의 입장에서 그게 타당한 것인지를 깊히 고민했는지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이에 대한 질문에 너무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고 앞으로의 논의 과정을 지켜보자며 애매한 답변만 하고 있다.
서해 공동어로 구역만 해도 그렇다.
평화 체제만 구축될 수 있다면 북방한계선(NLL) 아니라 비무장 지대도 재설정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아직 평화를 위해서 안보 상의 개념이든 영토 상의 개념이든 NLL을 시급하게 논의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
앞으로 북한 핵문제가 풀리는 과정을 보면서,또한 평화체제 협상 과정을 보면서 얼마든지 NLL을 놓고 남북 간에 논의할 수 있다.
단지 서해 5도 어민들의 수익을 높이자고 협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문제점의 지적도 충분히 가능하다.
여러 가지 경협 사안이 합의됐지만,그에 대한 구체적인 일정이나 절차도 언급되지 않고 있다.
부총리 급을 대표로 하는 회담 기구를 만든다는데,그러면 지금까지 장관급 회담이나 차관급 회담이 격이 낮아서 경협이 지지부진했다는 말인지도 의구심의 대상이다.
이 외에도 문제로 지적하려면 지적할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문제들 자체가 아니다.
어찌 이제 겨우 어렵사리 두 번째로 개최된 정상회담에서 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겠는가.
그걸 기대한다면 남북 관계의 성격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특별 수행원으로 다녀온 이들이나 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려는 사람들은 이런 의문 제기가 마치 정상회담을 폄훼하려는 시도인 것처럼 응대한다.
무지의 소산이든,다소 삐딱한 시선이든 간에 우리 국민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의문을 갖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나를 무조건 믿고 따르라'는 식의 대응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특별 수행원이라는 자리가 정상회담을 홍보하는 위치이겠지만,그래도 대부분은 소위 지식인의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지식인이 관료와 다른 차이점은 비판적이라는 데 있다.
정상회담이 두 번째로 개최된 것은 축하할 만한 일이고,그 자체로서도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성과에 대한 평가는 차이가 날 수 있다.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걸 좁히는 작업이다.
그래야 정부의 정책 추진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 점에서 정상들 간의 합의이니까 의심하지 말라고 방송에 나와 일갈했던 한 유명 소설가의 말은 그러한 시각 차이를 오히려 더 넓혀 놓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만일 앞으로도 정상회담이든 무슨 회담이든 계속해서 아전인수(我田引水)와 호들갑이 연출된다면,그로 인해 남한 내에 대북 정책을 둘러싼 남남 갈등이 지속된다면,그렇게 해서 얻은 남북 간의 평화란 의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 집안을 갈등으로 몰아넣어 가면서 다른 집안과의 평화를 찾는 일은 역설적이다.
좀 더 절제된 언행으로,다각적인 비판과 검증 작업이 활발하게 이뤄질 때 진정한 평화의 토대가 마련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