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雨植 <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 >

인류문명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궤적을 같이해 왔다.

연장과 도구를 사용한 농경과 목축으로 정착생활을 가능케 한 농업혁신,증기기관 및 전기의 발달로 노동생산성을 획기적으로 제고한 산업혁신,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한순간에 허물어뜨린 디지털 혁신에 이르기까지 문명발전에 큰 획을 긋는 대전환은 모두 과학기술의 발명과 진보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인류역사는 곧 과학기술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과학기술과 역사','과학기술과 인류문명' 간의 연관성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과학기술을 산업 발전이나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도구로 한정된 인식을 갖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박물관이나 과학관을 찾을 때 단순히 흥미로서 보기보다는 우리의 역사기록이나 전시물 속에 생생히 살아 숨쉬고 있는 우리 민족의 과학적 창의력과 뛰어난 과학기술 정신,그리고 역사 흐름속에서의 가치를 음미(吟味)해야 한다.

우리 민족의 뛰어난 과학적 사고와 창의력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 대표적인 과학자나 기술자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답할 수 있는 이름은 그리 많지 않다.

대체적으로 장영실 홍대용 최무선 지석영 등을 말한다.

게다가 그들의 업적을 설명해보라는 질문이 나온다면 대답은 한두 마디 정도에 그치고 말 것이다.

그뿐 아니다.

에밀레종으로 잘 알려진 국보 29호 성덕대왕 신종의 제작자가 박종익(朴從謚)이라는 주조기술자이며 종 표면에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것,매일 사용하는 신권 1만원 지폐의 배경인 천상열차분야지도가 권근의 감독하에 천문학자 유방택이 별자리를 계산해 만든 석각천문도라는 사실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까?

과거에 대한 기록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조상들의 삶과 가치관을 통해 우리의 현주소를 이해하고 나아가 미래를 계획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역사학자 E H 카가 말했듯이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며,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고 정체성을 찾으며 보다 나은 내일을 향한 자신감과 목적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때마침 정부는 국가 차원에서 우리나라 과학기술사료를 수집·분석해 우리민족의 과학기술 뿌리를 정리하고 전통과학기술을 발굴해 현대기술과의 접목을 도모하고자 과학기술사료를 체계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과학기술부가 중심이 돼 이미 지난 7월 예비전문가 모임을 가졌고 이달 말에 관련분야 전문가를 중심으로 과학기술 선현 및 고문헌 분야를 포함해 과학기술사대계(大計) 정립 및 종합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목표로 이른바 '우리나라 과학기술사료 족보'마련을 위한 추진체를 가동키로 했다.

이와 더불어 내년 말에 준공되는 과천국립과학관에 과학기술사료 전문연구 전시실을 새로 설치하는 등 한국 과학기술사 연구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도 만전을 기해 나가고 있다.

이런 작업들은 흩어져 있는 자료를 수집하고 심도 있게 연구할 수 있게 하는 한편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소중한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보존·정리·전시해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발자취를 한눈에 확인하고 긍지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이다.

우리의 전통과학 유산과 그것을 창조해낸 과학기술자를 배우고 기억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자 미래 과학기술강국을 향한 필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가 세계 과학경쟁력 7위,기술경쟁력 6위라는 성과를 일궈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쇄혁명이라 알려진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술보다 앞서 우리나라는 현존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철'을 발명한 자랑스런 과학기술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민족이다.

이제 과거에 묻혀있던 과학기술유산에 생명을 불어넣자.한민족의 과학적 창의력과 우수성이 우리의 생활과 정신에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자긍심을 갖도록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모아 과학기술의 족보를 만들자.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과학한류(科學韓流)'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