吳永鎬 < 산업자원부 제1차관 >

"산에는 산삼,바다에는 해삼(海蔘)"이라는 말이 있다.

자양강장식으로 애호되고 있는 해삼은 중국·일본 등지로 수출돼 어민 소득증대에 기여하는 고부가가치 어족자원 중 하나다.

조선시대 3대 어보(魚譜)이자,실학자 서유구가 저술한 '전어지(佃漁志)'에는 해삼의 명칭 유래에 대해 "약효가 인삼에 필적한다 하여 바다의 인삼이란 뜻으로 붙여졌다"고 기술(記述)돼 있다.

이러한 해삼에게는 '숨이고기'라는 평생친구가 있다.

숨이고기는 체구가 작아서 큰 고기에게 먹히기 쉬운데,해삼의 배출강 끝을 들락거리며 큰 고기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대신 해삼은 숨이고기의 활동을 통해 깨끗한 물과 산소를 공급받는다.

이는 해삼의 원활한 번식을 돕는 원동력이 된다.

해삼-숨이고기의 공존방식과 유사한 사례는 생태계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악어와 악어새,말미잘과 흰동가리,꽃과 벌,개미와 진딧물….참으로 다양한 종(種) 간 공생은 생태계 역사가 축적되는 수백만년 동안 맺어지고 진화돼 왔다.

이것이 바로 생태계를 지배하는 '경험칙(rule of thumb)'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생태계의 경험칙은 '기업생태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대기업은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의 역량이 뛰어나야 자신이 생산하는 완제품의 경쟁력이 높아진다.

중소기업은 납품하는 대기업의 수출이 잘 되어야 자신의 매출이 증가하고 수익도 커진다.

"누이좋고 매부좋고…"라는 우리 속담에 딱 들어맞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협력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근 주요 대기업을 중심으로,소위 '짠물경영' '내핍경영'이 한창이다.

고유가,원화절상,원자재 가격 급등의 3중고(三重苦)에 대응하기 위해 '원가절감' '생산성 향상' 등 이름은 달라도 저마다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기업의 자구노력만으로 과연 이런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을까.

위기 극복방안으로 두 가지를 상정해볼 수 있겠다.

먼저 일방적 '납품단가 인하형'이다.

대기업이 납품단가인하를 일방적으로 요구하면 1차 협력업체는 우선 손쉬운 방법으로 임금 상승을 억제하고,연구개발(R&D) 투자를 줄인다.

이럴 경우 2~3차 협력업체에 부담이 전가되기도 한다.

이러한 연쇄작용은 부품·소재의 품질을 떨어뜨려 결국 대기업의 경쟁력도 악화시킨다.

다음으로 '공동개선활동형'을 생각해볼 수 있다.

대기업과 협력업체 간 공동 품질개선과 공동 R&D 등을 통해 대기업은 원가절감과 부품성능 향상의 이익을 얻고 협력업체는 품질경쟁력을 높여 안정적 판로를 보장받을 수 있다.

두 방안 중 어느 것이 바람직한 위기극복 방안인지는 자명(自明)하다고 본다.

상생협력의 더 큰 성과를 보지 못하고,손 쉬운 방법으로 눈앞의 단기 이익만 추구한다면 소탐대실의 우를 범할 수 있다.

고유가를 비롯한 우리 경제의 3중고는 '누이좋고 매부좋은' 상생으로 극복할 수 있다.

나아가 상생협력은 이제 세계시장으로 그 시야와 무대를 넓혀야 할 때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개방모드'의 확산은 요즘 기업경영의 화두(話頭)다.

무역으로 성장한 나라인 만큼 FTA는 우리에 절호의 기회다.

기회가 주어졌으면 이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협력업체와의 상생경영을 통해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도요타'의 사례가 이미 증명하고 있듯이,이제 우리 대·중소기업의 상생협력은 그 무대를 국내시장뿐 아니라 세계시장으로 넓혀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오는 24일 개최되는 '상생협력 국제컨퍼런스'는 주목할 만하다.

기업을 비롯해 학계와 언론계 등에서 관심을 보이는 가운데 열릴 이번 대회에는 국내외 석학들이 참여해 글로벌 경제시대 성공적 상생협력의 발전 방안을 놓고 심도 있는 논의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우리 기업들이 '해삼과 숨이고기'와 같은 상생 경영전략을 통해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혜안(慧眼)도 제시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