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京俊 < 딜로이트컨설팅 파트너 >

동물원은 개체들의 생존이 보장돼 있는 평화로운 곳이다. 반면 사파리에서 개체생존은 미지수이지만 종(種)의 생존은 보장된다. 겉보기에 평화로워 보이는 동물원이 실상은 생명력을 상실한 죽은 장소인데 반해 무질서해 보이는 사파리는 자연질서에 입각한 적정수준 관리를 통해 생태계를 재생산해 내는 살아있는 공간이다. 가둬놓고 구경하는 동물원이 과거 생태계에 대한 지식이 빈약했던 시절의 산물이라면 사파리는 먹이사슬과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서 생겨난 성과다.

정부정책도 마찬가지다. 자원과 역량이 부족하던 시절의 정부는 '이래라,저래라'하는 시어머니처럼 구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사회가 복잡해지고 자원이 풍부해지면서 우리 사회 각자의 영역은 나름의 질서로 움직이는 복잡한 생태계로 진화해 왔다. '공업단지'보다는 '산업 클러스터'라는 단어가 익숙해지고,'벤처산업'보다는 '벤처생태계'가 넓은 함의(含意)를 가지는 것이 이런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정책도 동물원의 통제(Control) 관점이 아니라 사파리의 관리(Manage) 측면으로 진화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부동산 문제가 대표적이다. 애초부터 시장이라는 생태계를 정상적으로 작동시킨다는 관리에 나섰더라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안정된 부동산 시장이라는 동물원을 뛰쳐나온 맹수인 투기세력을 때려잡겠다고 세금폭탄에 이자폭탄까지 퍼붓고 있지만 결과는 '시장의 복수'라는 생태계의 혼란이다.

교육문제도 그렇다. 고위 당국자가 직접 나서서 대학의 논술문제까지 간섭하고 통제한다는 점에서 동물원 사육사 수준에 머물러 있는 대표적인 부문이다. 교원평가를 둘러싸고 교육부와 전교조 간에 갈등을 빚고 있지만,양자(兩者)는 수요자들의 선택권을 박탈함으로써 교육서비스 공급자들의 혁신과 건전한 교육 생태계의 발전을 가로막아 공교육 황폐화를 야기한 공동책임자이다.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가 공급자인 학교와 교사의 선택권이 제한돼 비싼 돈을 내고서도 질 낮은 공교육을 강매당하는 구조에 놓여있는 게 교육의 핵심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부 문제 교사의 처벌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정책 자체를 공급독점 체제에서 탈피시키고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해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돌려주어 시장이라는 생태계를 복원시키는 것이다. 수요자들의 선택과 압력은 자연히 공급자들의 혁신과 교육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유발할 것이다. 이번 연가투쟁을 두고 '최소한의 교사 선택권이 학부모에게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출자총액제한 제도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과거와는 달리 대기업의 지배구조도 적대적 M&A 시장의 발달,소액주주운동의 활성화가 나타내는 것처럼 시장 자체의 감시기능 강화를 통해 나름의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 정부가 개별 기업의 출자금액까지 시시콜콜 간섭하지 않아도 이해(利害) 당사자 간의 먹이사슬이 대주주의 전횡을 견제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시장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는 기업은 망한다. 국민의 요구를 올바른 정책으로 반영하지 못하는 정부도 망하게 된다. 지난해 재경부 간부 워크숍에서 '재경부가 망하는 시나리오'라는 주제로 토의를 벌인 것도 이런 맥락에 있다. 당시 '망한다'는 의미를 '국민 신뢰가 떨어지고 경제종합부처로서의 조정기능을 상실해 결국 타기관으로 흡수되거나 해체되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정책 당국이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존재의미를 상실해 소멸된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사회의 진화를 정책이 따라가지 못해 생기는 격차는 결국 공동체 모두의 부담이다. 정책의 기본 관점도 동물원 사육사 수준에서 벗어나 생태계의 관리자로 진화하지 못한다면 정부는 우리 사회의 합리적 조정자가 아니라 국민의 세금만 낭비하는 불필요한 간섭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