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이 한 대학 특강에서 했다는 발언이다. 그러면서 삼성 등 일부 대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를 거론했다. 학생들에게 대기업의 잘못된 지배구조 때문에 중소기업들이 죽는다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딱 좋은 발언이다. 공정거래법을 다루는 책임자가 이런 식의 단선적이고 부적절한 논리를 대학생들 앞에서 펼 수 있는 것인지 따져 보지 않을 수 없다.
공정거래위원장의 의도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중소기업 문제를 들고 나와 대기업에 대한 지배구조 간섭 및 출자총액제한제 등 각종 규제가 정당하는 점을 강변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공거거래법의 본질을 호도(糊塗)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누차 지적한 바 있지만 기업지배구조는 해당 기업과 그 이해당사자들이 선택할 문제다. 전 세계적으로도 그렇지만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중소기업 문제는 지배구조와는 전혀 다른 얘기다. 권 위원장 말대로 재벌의 불공정한 횡포로 중소기업이 살아남기 어렵다면 불공정 행위 그 자체를 공정위가 엄히 다루면 될 일이다. 경쟁촉진이야말로 공정위가 마땅히 해야 할 본연의 임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공정위가 지배구조를 거론하는 것은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한 잘못을 엉뚱한 곳에다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것과 하등 다를 게 없다.
권 위원장은 재벌들이 적은 지분으로 많은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이 또한 학생들에게 잘못된 기업관을 심어줄 만한 발언이다. 이른바 소유-지배 괴리도는 기업성장의 역사적 맥락(脈絡)에서 보지 않으면 안된다. 정부 스스로 소유분산 정책을 취한 것도 한몫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다른 선진국 기업에서도 발견할 수 있으며, 유독 우리나라 대기업들만 심하다고 볼 근거도 없다.
소수 재벌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다고 한 발언도 오해를 불러올 만하다. 내수시장이 작고 수출을 많이 하는 국가들은 경제력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우리처럼 경제력 집중 자체를 공정위가 규제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더구나 지금은 글로벌 시대다. 언제까지 국내시장만 보고 기업들의 발목을 잡을 텐가. 누구보다 공정해야 할 공정위 위원장이 편향성(偏向性)을 보인 것 자체가 공정성을 상실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