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는 100여년간 끊임없이 도전과 혁신의 성장사를 써왔으며 르노의 혈통에 이런 유전자를 심어준 인물은 창업주 루이 르노다.
세계 최초로 기어박스를 개발하는 등 혁신을 선도한 그는 100년 전에 이미 자동차 경주 대회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경영능력을 보여 오늘날 르노가 F1(포뮬러 원)을 통해 브랜드 파워를 키우는 모티브를 제공했다.
파리(프랑스)=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
◆ 성장과정
○내기에서 이긴 루이 르노
1898년 12월24일 크리스마스 이브.루이 르노는 친구들과 자신이 만든 자동차가 파리 몽마르트의 가파른 언덕을 올라갈 수 있다는 데 내기를 건다.
친구들은 그가 르노의 1호차가 된 브와튀레트를 몰고 언덕길을 오르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차는 루이 르노가 자신이 만든 삼륜차(드 디옹 부통)에 세계 최초로 개발한 기어박스(디렉트 드라이브)를 달아 개조한 사륜차였다.
루이 르노는 내기에서 이겼을 뿐 아니라 선불을 받고 차량을 12대나 주문받는다.
그의 자동차 인생은 이렇게 시작됐다.
1877년 2월 파리의 전형적인 부르주아 가문에서 태어난 루이 르노는 어릴 때부터 엔진 등 기계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형 마르셀과 페르난드가 1899년 세운 가족 기업 르노 브라더사에 참여했다가 형들이 자동차 경주사고와 지병으로 죽자 회사 이름을 루이 르노 자동차로 바꾸고 32세의 나이에 최고경영자가 된다.
○글로벌 경영의 시작
루이 르노는 일찍부터 글로벌 경영에 눈을 떴다.
1905년 르노사는 생산방식을 수제생산에서 대량생산으로 전환하고 파리 런던 뉴욕에서 발주한 택시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업은 대성공을 거둬 2년 뒤 파리와 런던의 거리를 달리는 택시 2대 중 1대는 르노의 차량이었다.
루이 르노에게는 전쟁도 사업 기회였다.
1917년 그는 프랑스 육군의 요구에 맞춰 장갑차 FT-17을 만든다.
당시 전차들의 평균 무게였던 20~30t보다 훨씬 가벼운 7t으로 기동력이 뛰어난 데다 세계 최초로 회전식 포탑까지 장착한 이 전차는 연합군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르노는 명성이 더욱 높아졌고 비앙크루(제1공장)근처에 위치한 스갱섬에 제2공장을 짓고 해외로 사업을 확장한다.
1929년 당시 르노는 벨기에와 영국에 공장을 세우고 49개국에서 차량을 판매하는 글로벌 기업이었다.
이 시기 르노는 선박과 비행기 엔진을 포함해 엔진이 달린 것이라면 무엇이든 만들어냈다.
대공황의 여파가 엄습했던 1930년대에는 대대적인 생산성 향상 및 비용 절감,구조조정 등을 통해 위기를 넘겼다.
한때 프랑스 비행기 제조업체인 코드론을 인수하고 에어 프랑스 지분을 사들이는 등 인수·합병(M&A)과 제휴에도 눈을 돌렸다.
글로벌 경영에 몰두하던 루이 르노는 그러나 2차 대전 중 점령군인 독일군이 프랑스 군대에게서 빼앗은 탱크를 수리해줬다는 죄명으로 수감됐고 한 달 뒤인 1944년 10월 66세로 숨을 거둔다.
○국영화와 민영화
창업주가 타계한 뒤 르노는 국유화됐지만 르노라는 이름과 기업 정신은 계속 유지된다.
국영기업 르노는 소형 승용차 4CV로 대박을 터트리지만 무리한 미국 진출과 민영화 지연으로 발목이 잡힌다.
르노는 1979년 지프 브랜드로 유명한 미국 AMC(어메리칸 모터)를 인수,미국에 진출했지만 현지 공략에 실패하고 결국 AMC를 크라이슬러에 매각한 뒤 미국에서 철수한다.
1980년대 사상 최악의 적자에 직면한 르노는 전 직원의 10%(2만1000명)를 줄이는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하지만 볼보와 합병 실패로 국영기업으로서의 한계에 직면한다.
르노의 정체성에 대한 비난여론이 들끓자 프랑스 정부는 결국 1996년 르노를 민영화시킨다.
○닛산 인수와 카를로스 곤
르노는 1999년 3월 경영난을 겪던 일본 닛산자동차의 지분 36.8%를 사들인 뒤 카를로스 곤을 구원투수로 투입한다.
곤은 3년간 적자에 시달리던 닛산을 부임 1년 만에 흑자로 탈바꿈시키는 수완을 발휘한다.
르노는 또 루마니아 자동차 회사 다시아를 인수,신흥시장 공략을 위한 중저가 차량 생산을 맡겼고 삼성자동차를 사들여 르노삼성자동차를 출범시켰다.
작년 4월 르노의 회장에 오른 곤은 지난 2월 '르노 커미트먼트 2009'를 발표,앞으로 4년 안에 르노를 유럽에서 가장 수익성 높은 회사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목표 달성을 위한 핵심 과제는 기술 혁신을 통한 신차 개발과 생산성 향상,비용 절감 등이다.
비록 출신과 경영 스타일은 다르더라도 루이 르노와 카를로스 곤은 도전과 혁신을 신념으로 삼는 카리스마적 경영자라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르노는 지난해 413억3800만 유로(49조9131억원)의 매출에 33억6700만 유로(4조654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계열회사인 닛산과 합치면 자동차 생산대수가 605만대(2005년 기준)로 GM 도요타 포드에 이어 세계 4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