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경기부양책에 대한 한은의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경기부양책이 뭐냐에 따라 다르다"는 다소 생뚱맞은 대답을 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이미 국회에 적자예산안을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며 "경기부양책이라는 말이 상당히 불투명해 단정적으로 뭐라고 답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기부양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세금과 예산'이라는 정책수단을 통해 국민의 가처분소득과 정부지출에 변화를 주는 재정정책,금리를 조절함으로써 물가와 고용 경기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통화정책으로 구분된다.

이 총재가 적자예산 문제를 거론한 것은 '정부가 이미 경기부양적 재정정책(확대재정)을 편성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의 경기부양책을 재정정책으로 한정시킴으로써 '통화정책은 금통위에서 알아서 할테니 더 이상 신경쓰지 말라'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전달한 것으로도 해석되는 부분이다.


○재경부-한은 충돌 가능성

이날 이 총재의 기자회견에서는 과거와 달리 콜금리를 인하할 것인지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금리 상승 기조가 마감된 것으로 봐도 되느냐"는 질문에 이 총재는 "뭐라고 말할 수 없다.

앞으로 경제상황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각자 견해가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 기조가 끝났느냐고 재차 묻자 이 총재는 "금방 올렸다가 내렸다가 하면 시장을 혼란스럽게 만든다"며 "오름세가 있으면 한동안 그대로 가는 수가 있고,내려갈 때는 여러 번 내려갈 수 있다"고 대답했다.

시장에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지난 8월에 마지막으로 단행한 금리 인상 기조를 갑자기 인하쪽으로 바꿔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북핵 변수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단서를 달아놓긴 했지만 금리 인하 가능성을 당분간 배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통상적으로 금리정책의 효과는 6개월 뒤에 나타나기 때문에 금리정책을 변경할 때에는 급박한 사정이 생기지 않는 한 6개월 이상 지켜본 뒤 결정한다.

지난 8월 콜금리를 인상한 점을 감안하면 한은은 내년 2,3월까지 지금의 콜금리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이르면 연말부터,늦어도 내년 초부터 경기부양에 나서려는 청와대 재경부와 충돌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얘기다.


○경기인식에도 큰 차이

박병원 재정경제부 제1차관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2002년 10월 있었던 북한의 핵무기 개발계획 발표 이후 가계 등 경제주체들의 경기 전망이 크게 하락한 점에 비춰볼 때 북한의 핵실험 발표 후 일부 단기적인 영향이 가시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또 "대내외 여건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경제성장률 전망 수정 등을 포함한 관련 대책을 내년 경제운용계획에 반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연말까지 고려하고 검토할 사항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정부가 나서야 할 만큼 경기가 나빠질 수도 있다는 언급이다.

반면 이 총재의 경기 전망은 여전히 낙관적이다.

실물 경기가 나쁘지 않고 금융시장도 회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경기 역시 민간소비와 건설투자가 좋아지고 수출도 호조세를 지속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총재는 거꾸로 물가를 걱정했다.

"원유가격 상승이 공산품,특히 공공요금에 반영돼 왔고 앞으로도 가격을 올릴 수 있는 인상요인으로 잠복해 있다"고 말했다.

북핵 사태로 인한 불확실성이 그리 크지 않으며,경기침체 가능성보다는 물가 불안의 위험을 더 경계해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그대로 유지했다.

경기흐름이 앞으로도 견조할 것으로 내다보는 한국은행이 정부의 '경기부양책 동원령'에 동참할 것인지는 아직까지 불투명하다.

그러나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경기부양을 요구하는 정치권의 압력은 한은 금통위의 정책결정에 큰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