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으로 출발한 그는 뛰어난 사업 수완을 현실 정치에 접목시켜 한때는 태국 정치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19일 밤 12시께 '거사'를 감행한 쿠데타군이 반나절 만에 무혈 입성할 정도로 그의 통치력은 이미 허물어져 있었다.
집권 초기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책이 인기를 몰고오는 듯 했지만 그 폐해가 적지 않음을 태국 민중들이 깨달은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특히 부패가 그의 몰락을 가속화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일부에선 그의 독선적 통치 스타일이 국론을 분열시켰다고 비난하고 있다.
○포퓰리스트의 결말
탁신은 1998년 타이락타이(태국인들은 태국인을 사랑한다는 뜻)당을 창당,2001년 총리에 취임했다.
곧바로 '의료비 감면'과 '부채 탕감' 정책을 꺼내 들며 농민과 빈민층을 사로잡았다.
다행히 태국 경제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벗어나 고속 성장을 지속했다.
이를 바탕으로 작년 2월 총선에선 하원 의석 500석 가운데 377석을 휩쓰는 압승을 거뒀다.
그러나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 때문에 '포퓰리스트'(populist)란 비판을 면하긴 어려웠다고 월스트리트저널 등이 보도했다.
국영은행이나 마을기금을 통해 쉽게 돈을 빌려쓸 수 있게 된 서민들이 상환 능력을 넘어서는 빚더미에 올라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국 야당인 민주당은 탁신 정부의 경제정책이 정부 보조에 기대려는 '의존적인 문화'를 낳았으며 '탁신경제학(탁시노믹스)은 환각제'라고 비난해왔다.
특히 빈곤층만 겨냥한 포퓰리즘 정책은 도시지역 중산층과 지식인들을 소외시키고 이들의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결과를 낳았다.
지난 4월 총선에서 방콕의 중산층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그의 퇴진을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독선적 통치 스타일도 문제
1949년 태국서 태어난 탁신은 경찰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경찰 간부로 재직할 때 미국에 건너가 공부를 하고 돌아온 탁신은 1980년대 컴퓨터 회사를 창업,경찰 재직시절의 인맥을 기반으로 '친(Shin) 그룹'이란 회사를 키워갔다.
이 회사는 이동통신 컴퓨터 등 분야를 포괄하는 태국 최대 정보통신기업으로 급성장했다.
이렇듯 경제계와 정계에서 동시에 성공을 거둔 그에겐 거칠 게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독선적 행태가 두드러졌고 이에 대한 비판 수위도 높아져왔다.
지난 1월엔 그의 일가가 회사 주식을 싱가포르 국영기업에 19억달러에 팔아 엄청난 이익을 챙기고도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아 국민들의 분노를 샀으며 사임 위기에 내몰렸다.
'조기총선''총선 뒤 총리직 사임' 등의 카드를 꺼내며 불명예 퇴진은 하지 않겠다는 고집으로 맞섰으나 결국 쿠데타를 불러오고 말았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