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중에서 '리시스트라테'라는 작품이 있다. BC 411년 첫 상연된 이 작품은 여성들이 '섹스 스트라이크'라는 기발한 발상으로 남성을 전쟁에서 구해 내고 평화를 되찾는다는 얘기다.

아테네의 젊은 부인 '리시스트라테'는 남자들이 벌이는 끝없는 전쟁 놀음을 종식시키기 위해 성적(性的) 보이콧에 착안하게 된다. 그녀는 아군은 물론 적군의 아내들과도 결속해서 남자들이 화평을 맺을 때까지는 섹스를 거절하자는 운동을 벌인다.

처음에는 주저하던 여자들도 리시스트라테의 끈질긴 설득에 동조하여 군자금이 보관된 아크로폴리스에서 농성하며 섹스를 거부한다. 농성이 오래 가면서 금욕을 참지 못한 배신자들이 나올 뻔하지만 겨우 겨우 견뎌 낸다.

한 남자가 처를 만나러 신전에 왔다가 리시스트라테로부터 욕만 먹고 돌아간다.

아랫도리가 이상해진 양 진영의 남성들은 드디어 두 손 들어 화의를 맺고 여자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 성욕을 푸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요즈음도 섹스 보이콧은 있지만 고대 아테네와는 양상이 다르다.

어느 날 저녁 남편이 아내의 몸을 더듬기 시작하는데 아내는 전혀 준비 되지 않은 상태여서 당황스럽다. '샤워도 안 했는데… 양치도 안 했는데… 너무 피곤한데….' 이 때 아내의 반응에 따라 남편의 기분은 하늘을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땅바닥으로 고꾸라지는 수도 있다.

"아이 왜 이래,나 피곤해. 졸리단 말이야" 하고 훽 돌아누우면 남편은 자존심이 상하게 마련이고 한참 동안을 아내 곁에 가기가 싫어진다. 중년의 아내가 결혼 20년 만에 처음으로 먼저 시도했다가 거절당하는 경우에는 후유증이 심각할 수 있다.

이런 일이 자주 되풀이되면 부부 관계는 깜짝 놀랄 정도로 급속하게 악화될 수 있다.

섹스 스트라이크는 바로 풀지 않으면 곤란하다. 섹스도 습관이어서 문을 너무 오래 닫고 살면 다시 열기 어렵다.

부부는 너무 가까워 무촌이라고 하지만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솔직하게 말 꺼내기는 쑥스럽고 말 꺼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우리는 안 하고 산 지가 딱 10년이야. 서로 건드리지 않고 아예 잊어버리고 살았지 뭐. 그런데 어느날 문득 이렇게 살다가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용기를 내 작정하고 덤볐지. 잠자리에서 불을 끄고 얘기를 꺼냈는데 아주 담담하게 말하려고 했지만 하다 보니 설움이 복받쳐 눈물이 막 나는 거야. 내가 그거 생각이 나도 참고 울면서 잔 날이 하루 이틀인 줄 아느냐고 따졌지. 그럴래면 머리 깎고 중이나 되지 왜 결혼은 해서 나를 굶기냐고. 그리고 우린 달라졌잖아. 더도 안 바라고 한 달에 두 번만 하자고 했는데 진작 말할 걸 그랬어. 요즘 아주 좋아."

결혼에 있어 성생활이란 부부간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남편은 밖에서 힘들게 돈 벌어오는 사람이고 아내는 집에서 '노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라 직장 생활을 하는 여성이 절반이 넘는 지금도 대부분의 아내들은 남편이 원한다면 하기 싫어도,내키지 않아도 졸면서 대 주기라도 한다. 그런 문화에 익숙해진 남편들은 아내로부터 거절당했을 때 더욱 더 못 견디는 것이다.

요즘 용감무쌍한 아내들이 야시시한 잠옷 입고 아로마 향내 풍기면서 피곤에 절어 자는 남편을 괴롭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말로 아니다 싶을 때는 요즘 여성계가 핏대 올리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내세워 거절하는 것보다는 자기 상태를 구체적이고 솔직하게 표현하고 도움을 청한다면 서로 이해하고 조율하면서 굶지 않는 열쇠도 되고 자물쇠도 될 걸….

성경원 한국성교육연구소 대표 sexeducati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