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精敏 <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

디지털의 발달과 모바일 확산은 문화 콘텐츠산업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2005년 음반시장이 2000년에 비해 4분의 1로 축소된 반면,디지털 콘텐츠는 같은 기간에 4배나 성장했다.

또한 지식재산권 문제가 대두되고 방송과 통신 융합(融合)이 가속화됐다.

이런 과정에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기업은 사라지고,변화를 선취한 신규 기업들이 시장을 주도하는 등 업계 구조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디지털 충격에 따른 국내 콘텐츠 업계 재편의 중심에 있는 것은 통신기업의 콘텐츠 부문 진입이다.

SKT는 음반회사 YBM서울을 인수하고,종합 엔터테인먼트기업 IHQ의 최대 지분을 확보했다.

또한 KT는 IPTV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며,영화제작사 싸이더스의 지분에 참여했다.

국내 굴지의 인터넷 포털도 통신기업의 인수대상이 되고 있다.

통신기업의 콘텐츠 부문 참여는 여러 가지 산업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 유통에 기반을 가지고 있는 통신기업이 시너지 확보를 위해 제작 부문에 진출해 수직 및 수평 계열화한 것이다.

즉 디지털,모바일 시대의 파워가 유통(流通)에서 점차 제작으로 이동하면서 유통에 기반을 가지고 있던 통신기업들이 제작부문에 진출한 것이다.

둘째, 방송사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해 방송과 통신의 융합으로 나타난 신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것이다.

공중파 재전송에 대한 방송사의 견제와 새로운 방송·통신 서비스에 대한 콘텐츠의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직접 제작에 참여한 것이다.

셋째, 현재 겪고 있는 매출 정체로부터 벗어나 콘텐츠 부문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모색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통신회사들은 새로운 성장동력 중의 하나로서 디지털콘텐츠 및 미디어를 설정하고 있다.

통신기업의 진입에 따라 콘텐츠 시장은 당분간 혼란기를 거치겠지만 이후 안정적인 시장 질서를 구축(構築)하고 결과적으로는 시장규모가 크게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 콘텐츠 산업은 라디오의 등장,텔레비전의 등장으로 초기에 시장 축소,지식재산권 문제,업계구조 개편 등 혼란을 겪었으나 적응기를 거치면서 결과적으로 시장이 확대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번 통신기업의 진입도 디지털 충격으로 인한 혼란에서 적응하는 과정중 나타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한편 국내 콘텐츠산업 경쟁구조는 CJ와 오리온그룹의 2강 체제에서 KT와 SKT가 참여하여 4강 체제로 변화하고,방송시장은 SKT의 위성DMB 방송 진입, KT의 IPTV 참여 등으로 방송사간의 경쟁구조에서 방송사 대 통신사의 경쟁구조로 변화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기존 중소 콘텐츠기업의 입지가 위축될 우려가 있으나 킬러콘텐츠 제작회사는 오히려 입지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시작된 통신사업자들의 콘텐츠부문 진입 현상은 전 세계적인 초고속 정보통신망 보급 증가,BcN망 구축,방송·통신 융합 진전(進展) 등에 따라 해외로까지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발달된 디지털 인프라와 신규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들의 열정이 어우러져 이러한 진입이 우리나라에서 먼저 나타났으나 다른 나라도 디지털 여건이 확충되면 이들 지역에서도 통신기업의 콘텐츠기업 인수,통신기업과 콘텐츠 기업의 전략적 제휴 등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통신기업의 콘텐츠 진입이 국내 콘텐츠 산업 도약의 발판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통신기업과 중소제작사간 협력관계가 보다 강화돼야 한다.

특히 대기업인 통신기업은 풍부한 자원을 활용해 수출시장 개척과 신규 콘텐츠 및 비즈니스 개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또한 통신기업은 콘텐츠 제작 비즈니스의 특성에 맞도록 조직의 유연성(柔軟性)을 강화하고 기업문화를 개선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방송사를 비롯한 제작업체는 콘텐츠 제작 등 자신의 강점 부문에 집중해 차별화된 콘텐츠를 생산하고,정부는 무엇보다 핵심 제작인력과 글로벌 콘텐츠 인력을 확충하고 양성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