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옛 태평양화장품)의 최숙희 과장(33)은 요즘 기분이 좋다. 11월에 태어날 둘째 아이를 생각하면 신바람이 절로 난다.

"큰 애를 낳고 나서는 너무 힘들어서 둘째 애는 생각도 못했어요. 남편도 내심 둘째를 바라는 눈치였지만 직장생활하랴 애 키우랴 고생하는 저를 생각해서인지 차마 말은 꺼내지 못하더라고요."

그러던 최 과장 부부는 지난해 둘째를 갖기로 어렵지 않게 합의했다. 애 키울 걱정이 없어서다. 육아 계획도 벌써 다 세워뒀다. 11월에 애를 낳으면 출산 휴가 3개월을 쓰고,이후 육아휴직을 4~5개월 정도 더 쓸 생각이다. 그 다음엔 애 키워주는 아주머니를 8~9개월 정도 쓴 후 2008년 3월 회사 보육시설이 새 학기를 맞을 때면 애를 여기에 맡길 계획이다.

"저뿐만이 아니에요. 우리 회사에선 지금 둘째 바람이 불었어요. 하나는 낳겠지만 둘째를 가지면 '왜 그랬어. 힘들게…'하시던 분들이 애 키울 걱정이 줄어들면서 이제 서로 둘째를 가지려고 해요. 저희 층에서만도 최근 네 분이 둘째를 임신했어요."

둘째 아이를 생각 중이라는 브랜드매니저팀의 신은영 과장(31)도 "요즘 직원들 사이에서는 아이를 점지하는 삼신 할머니가 신용산에 내려와서는 다른 데로 떠날 줄을 모른다는 말이 나돌 정도"라고 귀띔했다. 나라 전체적으로는 '출산파업'이다 '저출산 위기'다 해서 난리통이지만 이 회사는 오히려 출산붐이 일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 회사 기혼여성 592명의 출산은 △2003년 60명에서 △2004년 67명 △2005년 76명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역주행이 가능했을까. 그 답은 출산·육아와 여성친화적 기업 문화에서 찾을 수 있었다. 화장품 제조업체인 이 회사는 전체 직원 3150명 중 56%(1750명)가 여성인 여초(女超)기업이다. 지난해엔 전체 채용인력 중 64%가 여성이었다. 따라서 여성 직원들의 사기와 충성도를 어떻게 높여 경쟁력을 높일 것인가가 경영의 최대 관건이 되고 있다. 회사는 과감한 여성 친화경영에서 해답을 찾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다양한 모성보호 복지 프로그램들이다. 이 회사는 서울 본사와 용인에 두 개의 보육시설을 운영하고 있고 육아휴직 기간 중 통상임금의 60%를 3개월 동안 제공하고 있다.

다른 회사에선 육아휴직을 쓰기도 눈치보이는 상황인데 이 회사는 정부에서 주는 월 40만원의 지원비에 월급을 보태주고 있는 것이다. 본사 여성휴게실에 설치된 산모들을 위한 고품격 모유수유 시설에는 간호사가 상주하면서 산모들의 육아 상담을 해주고 있다.

이런 출산·육아 친화경영은 실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2003년 이후 다양한 모성보호 프로그램이 시행되면서 2003년,2004년 주춤했던 매출과 이익이 강한 상승세로 되돌아갔다. 매출은 지난해 1조1719억원으로 전년 대비 6.0% 늘었고 올해는 1조2770억원으로 다시 9%가량 증가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지난해 영업이익도 전년 대비 11.4% 늘어난 2170억원으로 사상 처음 2000억원대를 돌파한 데 이어 올해 2300억원의 기록을 예상하고 있다.

이상욱 홍보팀 부장은 "가족친화 경영의 효과가 서서히 빛을 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직원들이 맘놓고 일할 수 있도록 출산·보육 지원을 더욱 확대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