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외환위기 이후 10년.가장 큰 충격을 받았고,그래서 가장 많은 변화를 겪은 곳 중 하나가 금융산업이다.

급격한 구조조정과 대외 개방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 금융산업은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새로 짜여진 금융산업의 큰 줄기는 거대 은행들을 축으로 한 금융지주회사들이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못지않게 중소 금융그룹도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다.

거대 금융그룹과 함께 금융산업의 근간을 튼튼하게 만들어 주는 중소 금융그룹은 어디인지 매주 2~3회씩 연재해 본다.



2005년 3월 한진그룹에서 계열 분리된 메리츠화재가 금융그룹을 위한 시동을 걸었다.

'메리츠(Meritz)'란 영어 이름 때문에 외국계 회사로 잘못 인식되기도 하지만 메리츠화재는 8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최고(最古)의 토종 회사다.

일제시대인 1922년 설립된 조선화재해상보험이 그 전신.해방 후 동양화재로 상호를 변경한 뒤 1967년 한진그룹으로 인수됐다.

고(故) 조중훈 전 한진그룹 회장의 4남인 조정호 회장이 경영을 맡아오다가 그룹에서 계열분리하면서 상호를 변경한 것.조 회장이 이끄는 메리츠증권(옛 한진투자증권)과 사명을 통일시키면서 자산 4조2000억원의 금융그룹을 위한 포석을 다진 셈이다.

메리츠그룹이 금융그룹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한진그룹에서 금융부문을 맡아온 조 회장의 리더십이 결정적이었다는 게 금융계의 평가다.

외환위기가 몰아닥친 1998년.메리츠증권은 900억원의 적자를 내는 등 재무구조가 취약해 퇴출 위기에 몰렸다.

이를 반전시킨 주인공이 바로 조 회장이다.

조 회장은 PAMA(프루덴셜애셋매니지먼트아시아)로부터 510억원의 외자유치를 성사시키며 이듬해 750억원의 흑자로 전환해 회사 경영을 안정시켰다.

외자유치에는 평소 친분이 있었던 당시 김한 PAMA코리아 대표의 도움이 컸다.

이 인연으로 김씨는 2003년 메리츠증권 부회장으로 스카우트돼 현재 조 회장과 공동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조 회장은 외부에 나서는 것을 꺼리고 언론에도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룹 안팎에서는 이 같은 조용한 리더십을 더 높이 평가하고 있다.

미국 남가주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스위스 IMD의 MBA(경영학석사)인 조 회장은 금융 식견이 높을 뿐 아니라 영어·불어에도 능통해 글로벌 인맥 네트워크도 풍부하다.

메리츠화재는 지난해 3월 한진그룹에서 계열분리한 뒤 PAMA가 보유한 메리츠증권 지분을 25.7% 인수,지분율을 28.8%로 끌어올리면서 자회사로 편입했다.

금융그룹의 첫단추를 끼운 것이다.

그룹 가족의 특징은 모두 '알짜 강소(强小) 기업'이라는 점이다.

메리츠화재는 자기자본 2300억원,총자산 3조1100억원의 중형 손보사다.

시장점유율 7.9%로 업계 5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264억원.메리츠증권은 자기자본 2100억원에 총자산 7000억원으로 업계 10위권 회사다.

2003년 김한 부회장 취임 이후 위탁매매에서 벗어나 자산관리 업무와 투자은행(IB) 업무 등 다양한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갖춘 증권사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불종금은 법적 계열사는 아니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룹 가족'이다.

프랑스 SG그룹이 최대주주(41.4%)이며 대한항공 등 옛 한진그룹 계열사 28.7%,조정호 회장이 2.4%씩의 지분을 갖고 있지만 실질적인 경영권은 조 회장이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기범 한불종금 사장은 2001년 조 회장이 선임했다.

자산 4100억원에 지난해 207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금융계가 메리츠그룹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금융그룹의 시너지 효과를 발판으로 높은 성장세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보험 증권 종금의 교차판매 및 원스톱 서비스 강화 등의 시너지 효과를 감안하면 잠재 성장력은 다른 금융그룹에 비해 높다"고 지적했다.

미국 보험회사에 오래 근무했던 금융전략통인 원명수 메리츠화재 사장은 "고객들에게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은행 투신까지 아우르는 종합금융그룹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며 "지금 당장 액션플랜은 없지만 금융그룹의 비전을 갖고 전략적 포지셔닝을 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실무 부서에선 금융지주회사 체제를 통한 '금융그룹'의 밑그림을 그리며 그룹의 중장기 비전을 찾기도 한다.

손보와 생보사 간 업무영역 철폐,자본시장통합법 등 급변하는 금융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전략을 짜는 것은 물론이다.

메리츠금융그룹은 이미 큰 바다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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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츠그룹의 CI '메리츠(Meritz)'는

'우수함·혜택·장점'을 뜻하는 영어 Merit와 '많다·풍부하다' 등의 의미를 담고 있는 영어의 복수성 어미 SS의 축약형 Z의 결합체다.

금융지식과 노하우가 풍부한 회사,상품과 서비스 등 고객들에게 줄 수 있는 혜택이 풍부한 회사로 거듭나겠다는 의지가 배어 있다.

메리츠증권은 2000년부터 사용했으며 화재는 동양화재의 보수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CI를 변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