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에 대한 이미지 중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한다는 것만큼 잘못된 것은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본주의는 다른 어떤 체제보다 노동자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었다.

18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은 사람이 처음으로 계급의 굴레를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전까지 인간은 계급에 묶여 있었고,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피지배계급은 지배계급을 위해서 노동을 해야만 했다.

산업혁명 이후부터의 노동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었고,타고난 계급이 아니라 돈 버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사업수완을 가진 사람들은 자본가가 되었고,그들 밑에서 일하게 된 노동자들에게도 생산성만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났다.

생산성만큼 받는 것이 가능해진 이유는 자본가들 간 경쟁과 노동자의 이동성 때문이다.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다 주는 노동자라면 다른 사용자들이 탐을 내서 스카우트를 하려고 한다.

노동자들도 자기를 더 대접해주는 곳으로 옮겨가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에 맡겨두면 노동자의 급여는 각자의 생산성에 수렴해간다.

자본주의 사회는 최초로 노동이 제 값을 받는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산업혁명과 더불어 노동자들이 착취당한다는 의식도 같이 생겨났다는 사실이다.

노동자들은 과거보다 높은 수준의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되었음에도,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한 파업을 일으켰다.

그 이유는 산업혁명에 의해 형성된 사회가 노동자들의 파업과 집단행동을 용이하게 만들었다는 데에 있다.

산업혁명과 더불어 많은 노동자들이 공장과 도시에 밀집하게 되었고,그것이 집단행동의 비용을 낮춘 것이다.

결국 대립적 노동 투쟁은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집단행동의 비용이 낮아졌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보는 편이 옳다.

한편 지식인들은 노동자들에게 자본가의 것을 빼앗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다는 이론을 공급해준다.

그들은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를 적대적으로 그려 놓는다.

정치인들도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노조의 집단행동에 대해 면책특권들을 부여한다.

역설적이게도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들이 노조 천국이 되어간다.

하지만 대립적 노동투쟁은 알을 꺼내려고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격이었다.

노조의 힘이 강한 나라일수록 경제는 시들시들해져갔다.

그 대표격이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이었고,더 이상 노조의 무게를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영국 국민들은 '대처'라는 리더를 선택한다.

그녀는 노조로부터 법적 특권들을 뺏어서 다른 모든 조직과 대등하게 만든다.

노조 조직률도 현저히 낮아진다.

그 결과 영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고 경제의 역동성도 되찾았다. 다른 나라들에서도 영국의 모범을 배워가고 있다.

노동의 성격이 바뀐 것도 노조의 힘을 떨어뜨린 중요한 원인이 된다.

처음에 단순 작업 위주이던 노동이 지식 노동으로 바뀌게 되었고,각자의 노력이 생산성에 미치는 효과도 확대되어 갔다.

그러다보니 임금 수준이 획일적이 되는 노조 체제에 불만을 가진 노동자들이 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도 이제는 10%까지 떨어졌다.

미래학자들이 예견하듯이 노조는 사라질 것이고,그것이 노동자들 자신에게도 이익이다, 노동자의 보수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생산성인데,노조는 생산성을 낮출 뿐이기 때문이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KCH@cf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