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운 < 시인 >

산도 들도 강변도 온통 연초록빛으로 싱그러운5월이다.

이렇게 좋은 날 모든 이의 가슴속에도 초록 물결이 넘실댔으면 좋겠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달려라 냇물아 푸른 들판을…."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대다보니 절로 하늘도 한번 쳐다보게 된다.

그야말로 5월은 사랑의 달,축제의 달이라 할 만큼 기념일이 많다.

평소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나 부모님께 소홀했던 마음을 다잡고,가정의 달을 맞아 하루만이라도 시간을 내 가족을 즐겁게 해주려고 마음을 쓴다.

놀이공원이나 용돈,혹은 선물도 좋겠지만 돈으로도 할 수 없는 선물이 있다.

가족끼리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면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시간을 갖는다면 무엇보다 값진 선물이 되지 않을까.

가족이 함께 모여 얼굴을 마주보며 속마음을 주고받는 일도 쉽지는 않다.

"현실이 힘들면 나를 보라"고 한 장애인 구족화가 앨리슨 래퍼."

어머니와 제대로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없었으므로 어머니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잘 모른다"고 하는 그의 말 속엔 지난날의 회한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선천적인 기형아로 태어나 버림받았던 그는 원하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 다른 사람보다 몇 배나 더 노력해야 했다.

비장애인 엄마들도 하기 힘든 육아도 스스로 해냈다.

실로 그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위대한 인간승리자다.

몇 해 전 죽음을 목전에 둔 어머님의 편안한 모습을 보았다. 이 세상에 자식 사랑만큼은 어머니를 따를 자가 없다.

큰아들을 먼저 보낸 후 근 1년간 어머니의 세월은 없었다. 자나깨나 아들 생각을 놓지 않더니 병을 얻었다.

그런데 죽음이 임박했을 때는 꼭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러 가듯 행복한 모습이었다.

"내가 가면 이놈의 자식 한번 안아볼 수 있겠지"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니의 표정은 아들을 만나러 간다는 설레임으로 일렁거렸다.

아들을 보겠다는 일념에 죽음마저도 초연했다.

부모가 자식에게 쏟는 사랑을 10분의 1만이라도 돌려드리면 효자소리 듣는다는 말이 딱 맞다.

그래서 '내리사랑'이란 말이 나왔을 게다. 부모에게 못한 것을 자식에게 갚는 대물림 사랑. 그러나 요즘은 어떤가. 이혼을 해도 서로 자식을 안 맡겠다고 하니 세상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양육권 문제로 다툼하던 건 옛말이 됐다.

며칠 전 친구들과 동네 주막에서 막걸리 한 잔 할 일이 있었는데,우연히 그 자리에서 불과 보름 전에 홀로 술 마시던 중년의 남자를 또 만나게 됐다.

건장한 몸과 서글서글한 인상에 형형한 눈빛하며 처음 봤지만 인상 깊었던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도 가슴앓이가 있었다.

아내가 집 나간 지 1년 반 만에 돌아왔으나,아내는 말할 수 없을 만큼 병으로 쇠약해져 있었다.

그는 아내가 없는 동안 아이 둘을 보살피며 기다려 왔다고 했다.

아내를 모두 다 이해한다,용서한다,말은 그렇게 하지만 얼마나 힘들었을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부처가 따로 없다.

그가 바로 생불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어느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고등어자반 한 손 제 속을 버리고 한 쌍이 되었다"라는 시구가 왜 그 순간에 떠올랐을까? 부부도 한세상 나란히 포개지려면 고등어자반처럼 그 속을 다 비워내야만 서로를 껴안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 사람의 아내도 늦게나마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을 것이다.

'한 그루 늙은 나무도 고목소리 들으려면 속은 으레껏 썩고 곧은 가지들은 다 부러져야' 되듯 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이 그냥 되는 게 아니다.

끝없이 인내하고 비우는 일의 연속인 것 같다.

5월의 푸른 하늘을 보면서 잠깐의 관심이 아니라 오래 돌아보고 반성하고 깊이 사랑할 수 있는 계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지금 당장 시골에 계시는 아버님께 전화라도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