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경주를 다녀왔다. 경주에 건설 예정인 '양성자가속기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경주시와 원자력연구소가 협력협정을 맺었다.
협정 체결을 마친 뒤 점심식사차 한 음식점에 들렀을 때 경주 시장께서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다. 양성자 가속기가 들어오는 것은 좋은데,오죽하면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까지 유치했겠느냐면서 지방도시의 어려운 경제사정에 대해 역설했다.
대부분의 국민은 경주에 한 번쯤 들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부부 또는 가족끼리의 여행이라든가 신혼여행,그것도 아니면 중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으로라도 다녀왔을 것이다.
빼어난 자연경관과 천년 고도의 유서를 간직해 단골 수학여행지로 이름난 경주. 이런 경주의 인구가 이제는 계속 감소해 30만명도 안 된다고 한다.
이상한 것은 가구 수가 늘었는 데도 인구는 감소했다는 점이다. 나이가 지긋한 부부는 귀향을 하는데 젊은 부부와 그에 딸린 아이들은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나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천년 고도에 최첨단 과학기술을 위한 양성자가속기가 들어선다는 사실보다는 이로 인해 경주 지역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도움을 얻고,인구는 과연 얼마나 늘어날 것인지에 대한 기대가 더 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우리 가족은 1980년대 말 미국에서의 10년 남짓한 생활을 접고 연고라고는 군대 훈련을 잠깐 받은 적밖에 없던 대덕연구단지로 이사했다. 어릴 때부터 서울에서 살아온 우리로서는 대단한 모험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직장이 대덕연구단지니 별 도리 없이 어떻게 해서든 정을 붙이고 살아가야만 했다. 우리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서울로 유학 아닌 유학을 떠났으니 이곳 연구단지는 우리가 한곳에서 가장 오래 산 도시가 됐다.
아직도 대덕연구단지에 근무하면서 서울에 거주지를 두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심지어 내가 기관장이 되어 인사를 다닌 몇몇 분은 당연히 서울에서 살다가 대덕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알고 걱정해 주시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서울 중심의 사고가 만들어낸 해프닝은 아닐까.
지방에서 살다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서울 중심으로 돌아가는지 확연히 드러난다. 모든 관공서가 서울에 있으니 회의를 하더라도 서울에서 한다. 친구들도 대부분 서울에 있으니 모처럼의 동창 모임이 서울에서 이루어진다. 시간적 경제적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지방에 사는 것이 핸디캡이 아니라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경주시도 우리의 양성자가속기 사업과 함께 큰 발전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