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집이 가난하나 무얼 좀 해보려고 하니,만냥을 꾸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지요."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대목에서 가난뱅이 허생에게 거금을 선뜻 빌려준 변부자는 실존 인물이었다. 그는 역관(譯官) 출신으로 도성 제일의 부자가 된 변승업의 할아버지였다. 변승업 집안은 9형제 중 6명이 역관이었고 280년간 106명의 역관을 배출한 갑부였다. 중인 계급의 역관들은 어떻게 이처럼 거부가 될 수 있었을까? 역사학자 이덕일씨는 신간 '조선 최대 갑부 역관'(김영사)에서 이들의 직업적 특성을 통해 그 뿌리를 찾는다. 역관은 요즘 말로 '투잡스족'으로 외교관이자 국제무역상이었다. 한국 기업의 초기 성장사가 종합무역상사의 성장사였듯 그때도 국제무역은 부자가 되는 지름길이었다. 역관은 또 외국 사신이 오면 통역을 해야 했기에 직업상 왕이나 고위 관료들과 자주 대면하고 깊은 관계를 맺었다. 역관들은 재산을 지키는 데도 유리했다. 부당하게 뺏길 경우 권력자에게 바로 알려 시정을 요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상대국의 부침과 자국의 권력 지형도에 따라 굴곡을 맞기도 하지만 뛰어난 수완으로 대외무역에 앞장섰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특히 중국과 일본을 잇는 삼각 중개무역으로 큰 돈을 벌었다. 중국에는 비단과 백사(白絲) 같은 공산품이 많았고,일본에는 구리와 은 등의 1차 상품이 흔했으며,조선에는 인삼이라는 특산품이 있었으니 이들의 무역활동으로 국가경제가 부강해지는 효과까지 덤으로 얻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중국어 학습교재 '노걸대'를 저술한 사람도 조선의 역관이었다. 이들은 또 무기수입상이나 첩보원,개화사상가,독립운동가로 활약했다. 뛰어난 외국어 실력과 대외정보력을 십분 활용해 화약 원료를 구입하거나 직접 제조한 사람도 있었다. 역관 오경석은 병인양요 때 특출한 첩보 활동으로 프랑스의 막강한 함대를 물리치게 했다. 천주교 서적과 서양 선진 문물을 조선에 들여왔고 한말 애국계몽운동을 이끈 것 또한 이들이었다. 한마디로 역관은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앞선 시대감각으로 조선사회의 변혁을 촉진한 주력이었다. 저자가 "역관은 조선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임에도 불구하고 중인이라는 신분적 한계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고 충분한 자료가 전해지지 않아 오늘날까지도 그들의 위상과 역할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는 이토록 다양한 모습을 지닌 역관의 실체를 입체적으로 복원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 책은 김영사가 '새로운 감각의 역사서 시리즈'로 기획한 '표정 있는 역사'의 첫 결실이다. 다양하면서도 깊이 있는 우리 역사의 백과사전을 만든다는 게 이 시리즈의 목적.앞으로 한·중·일 3국은 물론 북한과의 역사연구 교류를 촉진하면서 해외 판권 수출에도 적극 나선다는 계획이다. 220쪽,9900원.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