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현 <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 >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양극화'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온다.
국민께 드리는 편지에도 양극화해소가 표제로 언급되고 있고 '비정한 사회,따뜻한 사회'라는 기획에는 '양극화 시한폭탄 이대로 둘 것인가'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그리고 최근 논란이 된 이 기획의 두 번째 시리즈인 '압축성장,그 신화는 끝났다'라는 글은 "세칭 '서강학파' 계열의 경제학자들이 불균형 전략을 경제이론으로 뒷받침해 주었고,서강학파는 압축성장이라는 시대적 역할을 마치고,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다"며 '서강학파의 종언'을 선언하고 있다.
전직 총리는 이를 두고 "뭐 그 대학생 수준의 글을 굳이…"라고 평가했다지만 대학생 수준을 쉽게 보는 것은 금물이다.
그들이 똘똘 뭉쳐 정권도 바꾸고 나라도 바꾼 것 아닌가.
조금만 더 인용해보자. "한국은 IMF사태 이후 '새로운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한국전쟁을 방불케 했다는 IMF사태를 단시일에 극복한데 이어…." 흥미 있는 것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양극화가 급격히 심화됐건만 이 비장한 글은 조금은 비겁하게도 이 같은 시한폭탄이 나타난 데 대한 참여정부의 공헌(?)이나 기여(?)에 대해선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잘된 것은 자기 탓이고 잘못된 것은 서강학파 탓이라는 것이다.
'수출주도형 불균형 성장전략'이라는 단어에는 피와 땀과 눈물이 배어있다.
제대로 된 자원 하나 없는 좁아터진 한반도의 남쪽에 기업들이 들어서고 이렇게 일궈진 기업들이 엄청난 규모로 성장하면서 1인당 1만6000여달러,국내총생산 약 7000억달러의 놀라운 결과를 낳게 됐는데도 이 모든 기적의 과정과 산업화 주역들을 양극화라는 개념 하나 가지고 한꺼번에 폄하하려 드는 무모함에는 머리를 싸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IMF 이후는 성공적이었다면 IMF 이후의 '새로운 기적'은 누가 중심이 돼 이뤄낸 것인가? 그리고 그 '새로운 기적'의 기간이 양극화가 진짜로 심화돼온 기간이라면 이를 또 어떻게 볼 것인가?
IMF위기는 기본적으로 외화유동성 위기였다. IMF는 우리에게 275억달러를 빌려줬고 우리는 1998년 한 해에만 400억여달러의 경상흑자를 냄으로써 유동성 부족을 해결했다.1998년 말에 무디스를 비롯한 신용평가사들은 우리의 신용등급을 투자등급으로 상향 조정함으로써 위기극복을 인정했다. 계속된 경상수지 흑자 행진이 바로 외화 유동성위기 극복의 주요인이었고 이는 기업들의 내재적 경쟁력이 살아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기업부문을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몰면서 공공부문 노동부문에 비해 강도 높은 규제를 했고 투자마인드는 위축됐다. 게다가 벤처버블 카드버블 부동산버블이 남발되면서 그 후유증으로 내수가 침체되고 경제는 저성장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경제가 저성장 구조로 가면 제일 먼저 타격을 받는 건 저소득층이다.
여기에다 분배라는 화두를 갖고 증세를 하기 시작하면 내수는 더욱 위축되고 그 후유증은 고스란히 저소득층에게로 돌아간다. 양극화의 골이 깊어지는 것이다.
양극화를 부각시키는 최근의 분위기 속에는 이를 해결하려는 의도만이 아니라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양극화를 가지고 자랑스런 경제성장의 역사를 폄하하고 있다.
또한 "나는 해결하고 싶은데 '쟤'때문에 해결 안 되는 과제"로 양극화를 부각시킴으로써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성장이 제대로 안돼 일어난 양극화를 가지고 성장론을 비판하는 자기모순마저 드러내고 있다.
진정으로 양극화를 해결하려면 남은 2년간 획기적 규제완화와 기업들의 기살리기를 통해 무너진 성장동력을 재가동시켜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제2,제3의 '서강학파'가 등장해야 할 때이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뿐만 아니라 '경제성장사의 재인식'이 절실한 시점이다.
/바른사회시민회의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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