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년 동안 세계의 경제 대통령으로 군림해온 앨런 그린스펀이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자리를 후임자인 벤 버냉키에게 물려주고 공식 퇴임했다. 새로 수장(首長)이 된 버냉키가 어떤 식으로 FRB를 이끌어 나갈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세계 경제의 향방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고 한국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는 만큼 주목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버냉키 의장은 일단 그린스펀의 정책 기조를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린스펀이 유연한 시장친화적 정책을 견지하며 유례없는 장기호황을 이끌어온 만큼 갑자기 큰 변화를 줄 필요성은 느끼지 못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세계경제의 최대관심사인 금리운용 측면에서도 큰 변화의 가능성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린스펀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마지막 주재하면서 금리를 인상해 그의 부담을 줄여준 만큼 오히려 정책선택의 폭이 넓어진 셈이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볼 때는 상당한 수준의 정책적 변화가 수반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미 잘 알려진대로 그는 인플레 타기팅제(물가목표 관리제)를 선호하는 인물이다. 인플레 타기팅제란 물가목표치를 정해 놓고 물가상승률이 이보다 낮으면 금리를 내리고 높으면 금리를 올리는 제도이고 보면 미 경제의 호조와 물가상승이 이어질 경우 금리 역시 인상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될 공산(公算)이 크다. 그가 쌍둥이 적자를 크게 우려하고 있다는 점도 변화의 가능성을 감지케 하는 대목이다. 의회 청문회에서 그는 막대한 재정적자의 축소 필요성을 강조했고 무역적자 및 위안화 환율과 관련해서도 중국당국의 성의있는 노력을 촉구했다. 균형재정 달성을 위한 긴축 정책이 현실화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달러화 약세 유도 정책도 보다 강력해질 수 있음을 시사한 셈이다. 비록 중장기적 관점이라고는 하나 FRB의 정책 변화가 가시화된다면 우리 경제 역시 큰 영향을 받게 될 건 불을 보듯 뻔한 이치다. 특히 달러화가 약세로 기울 경우 위안화뿐 아니라 원화 가치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농후(濃厚)하고 그리 되면 수출에도 막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금융당국은 FRB의 변화가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훼손하고 경기회복의 불씨를 꺼트리는 사태로 연결되지 않도록 국제금융시장의 추이를 예의 주시하면서 유연하고도 적절한 정책 대응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